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외계 생명이 읽을 소설을 제작하는 길 본문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제 4회 독회를 통해 작성된 독회 의견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올린다.
이갑수의 『외계 문학 걸작선』(문학과지성사, 2023.02)은 우선 썩 다양하고 풍요한 지식을 소설적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그리고 그 지식들은 상식적 선에서 대체로 온당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판타지’와 ‘사이파이 S/F’를 구별하는 가장 간단한 기준은 공상적 지식에 근거하는가, 과학적 지식에 근거하는가 여부이다. 이갑수의 소설들은 분명히 ‘사이파이’에 속한다.
반면 이갑수의 지식에는 과학적 지식과 문화적 지식이 혼잡하게 뒤섞여서, 난삽한 잡학의 더미를 이루고 있다. 이 넘치는 지식 자체는 좋은 창작적 자원이다. 한데, 과잉의 중력이 작품의 성향을 이끄는 기운도 분명 있다. 무인탐사선 ‘보이저 1,2호’에 ‘금제음반’이 실린 사실을 길게 늘어놓을 수도 있으나, 그와는 달리, 이 탐사선들이 태양계 너머로까지 여행을 계속하는 데 기능한 ‘중력도움’의 원리에서 인류학적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다. 이는 ‘사이파이’의 기본 주제인 ‘인간 이후’의 문제를 회귀적으로 모색하는가, 전진적으로 모색하는가, 라는 의미심장한 차이를 발생시킨다. 물론 둘 중 하나가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방향은 성찰의 ‘장소’가 다르다는 것을 가리킬 뿐이다. 그래서 「우주시점」같은 수작은 ‘인류세’의 상황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돌아보게 한다. 다만 소설집의 제목은 작품들의 실제와 어긋나 보인다.
물론 이는 사소한 일일 수 있다. 오직 유념할 것은 풍부한 지식은 늘 창작의 자원으로서의 정보 더미라는 수준에 있을 뿐이라는 것, 즉 문학의 출발선 직전에 있다는 사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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