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버지니아 울프의 『보통의 독자』 본문
푸른 망아지의 호기심으로 가득찬 독서노트
버지니아 울프, 『보통의 독자』, 박인용 옮김, 함께 읽는 책, 434쪽, 11800원
우리에게 흔히 ‘의식의 흐름’이라는 난해한 소설 기법으로 알려져 있는 영국의 여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독서노트이다. ‘추천의 글’을 쓴 전은경 교수에 의하면, 이 노트는 그의 대표작인 『델러웨이 부인』과 같은 시기에 씌어졌다.“점심 전에는 소설, 오후에는 에세이”를 썼다는 것이다. 창작의 긴장을 “식히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추천자는 적고 있다.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휴식의 운동은 보통 활기차지 않다. 버지니아의 독서는 문면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작가의 글쓰기의 생애 전체를 주파한다. 마치 호기심에 가득 찬 망아지처럼. 그렇게 뛰어다니며 삶을 글과 대비시키고 사람에서 작가를 분리시킨다. 이 푸른 말의 눈은 여간 섬세한 게 아니어서, 무엇이 글쓰는 사람을 작가로 만드는 지를 날카롭게 포착해낸다. 가령 이렇게 쓰고 있다. “그녀는 특별히 누구도 염두에 두지 않고 모두를 위해, 우리 시대를 위해, 그녀 자신의 시대를 위해 글을 썼다. 달리 말해 제인 오스틴은 그처럼 어린 나이에도 글을 쓰고 있었다.”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문장의 구절 하나 하나를 떼어서 음미한 후 다시 연결해 보라. 그러면 “글을 쓰고 있었다”의 ‘글을 쓴다’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전율처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계를 몸으로 느껴 안다는 것이고, 그 체험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만 말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무지’가 ‘박학다식함’을 능가하는 일이며, 침묵의 음절이 어떻게 불멸성을 만들어내는지를 증명하는 행위다.
그러니 그녀의 독서에는 너무나 즐거운 ‘펀’이 있고 ‘게임’이 있다. 그러니 선입견에 사로잡혀 지레 겁먹지 말고 얼른 책을 펼쳐 보시라. 앨비(Edward Albee)의 희곡 제목을 멋대로, 다시 말해, 펀과 게임을 위해, 전용하여,“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랴”라고 속으로 소리지르며. (쓴 날:2011.4.26.; 발표: 간행물윤리위원회 좋은 책 선정위원회 선정 이 달의 좋은 책,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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