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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글/소설읽기

후보작 선정의 배경

비평쟁이 괴리 2023. 8. 29. 08:51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여덟번 째 독회에 대한 심사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이번에 후보작으로 선정된 김보영의 종의 기원담을 두고 이를 신작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세 편의 단편들을 연작으로 묶어 놓은 이 책에서 두 편은 이미 오래 전에 출간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작품이 보태짐으로써 이 소설이 장편의 모습을 갖추며 완성되었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은 동의를 모았다. 그 이전까지 작가가 발표한 종의 기원들은 연속된 단편들일 뿐이었다면, 종의기원담은 연작 장편인 것이다.

덧붙여 후보작에는 올리지 못했지만, 신진 류시은의 나의 최애에게(은행나무, 2023.06)가 주목을 끌었음을 밝힌다. 즉물적 사실주의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그의 소설들은 시시각각의 사태와 인물들의 시시각각의 박동을 빈틈없이 일치시키고 있다. 이 사실주의에는 현실은 없고 사건만이 있다. 이성이 통제하지 않는 감각들만이 있다. 이 사실들의 즉물성을 뒷받침하는 것은 세목들의 꼼꼼한 묘사이다. 그래서 이 사물 자체의 세계는 낯설음이나 생경함을 주지 않고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을 가진다. 이 꼼곰함은 아주 중요한 글쓰기의 덕목이다. 다만 즉물성은 오직 순간들에 대한 집요한 집착에 머물 수 있다. 언젠가는 이 즉자적 구체성 위에 대자-대타적 의미 충동을 집어넣어야 하리라 생각한다. 가령 인물들의 단편적 사실들을 치밀하게 묘사했던 에밀 졸라는 그 사실들을 사회적 가계도로 엮음으로써 19세기 후반기의 프랑스 사회에 대한 거대한 풍경화를 그려낼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 혹은 정명환 교수의 졸라와 자연주의(민음사, 1982)가 밝힌 대로, 사실들 뒤에 숨은 불가해한 마음의 범인류적 동굴을 졸라는 파헤쳤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의 작가도 지금의 세계 너머로 가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