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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예심을 통해 올라 온 7권의 시집 중에서 김상미의 『우리는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이윤학의 『짙은 백야』, 정숙자의 『액체 계단 살아남은 육체들』, 천양희의 『새벽에 생각하다』(가나다順)를 특별히 주목하였다. 이 시집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해당 시인들이 그 동안 구축한 시세계를 연장하면서도 타성에 빠지지 않고 더 큰 활기를 시에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시인들이 시에 관한 한 아직 ‘많이 배고프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허기가 그들로 하여금 새록새록 새로운 시를 쓰게 한다. 한국의 중년시인들이여, 축복이 있으라! 『액체 계단 살아남은 육체들』에는 시에 대한 의지가 용암처럼 분출하고 있다. 하지만 그냥 ‘시쓰고 싶다’고 외치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시를 쓰기 위한 조건과 재료와 방법과 태도의..

※ 아래 글은 『현대시학』 2021년 7-8월호에 실린 글이다. 과월호가 되었기 때문에. 블로그에 싣는다. 시의 숨은 힘 풀아 날 잡아라 내가 널 당겨 일어서겠다 (천양희, 「풀 베는 날」『오래된 골목』, 창작과비평사, 1998, 9쪽) 천양희 시인의 이 시구를 읽은 게 20년도 넘었습니다. 시인은 풀을 베다가, 베어진 풀의 죽음이 다른 생명들의 거름이 되는 걸 생각하다가, 풀의 희생을 추념하다가, 문득 그게 아니라 풀이 단순히 제 목숨을 바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원소를 제 몸 안에 들인 존재들의 몸 안에 새로운 생으로 깃든 것이라는 생각에 눈이 뜹니다. 그리고는 그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해서 풀의 신생이 참된 의미를 얻으려면, 그걸 소화한 이가 그 내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