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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 글은 1990년대 초엽에 씌어진 것이다. 다시 읽으면서 오늘날 미만한 '내 이야기'들과 모종의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아니 좀 더 과감하게 말해, 21세기적 경향의 기원이 이 즈음에 꼬물거렸는데, 그러나, 그 진화적 양태는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의심이 부쩍 인다. 당시에는 이런 소설들의 유형을 '후일담문학'이라고 불렀었다. 다른 명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소설가 자신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부쩍 늘고 있다. 소설가의 과거와 현재의 대비가 거의 상투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한 형식이 되고 있고 그 밑을 흐르는 주 음조는 탄식이다. 탄식의 원인은 뻔하다. 옛날이 좋았다는 것이다. “지난날의 눈은 어디 있는가?”라고 소설가들은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가? 그..

● 정치소설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추리소설인가? 아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일종의 가상현실이다. 이명행의 『노란 원숭이』(해냄, 1996)는 한국의 현재 위에 가상의 한국을 입힌다. 그리고 가상은 반-현실도 비-현실도 아니다. 피에르 레비가 적절히 말했듯이 가상적인 것(le virtuel)의 반대는 현실적인 것(le réel)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l'actuel)이다. 가상적인 것은 현실화되기 위해 준동하는 잠재태다. 작가가 입힌 또 하나의 한국은 실제의 한국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그 둘은 너무나 닮았다. 실제 한국의 도처에 난 물집들을 슬쩍 건드리기만 하면, 잠복된 한국이 진물처럼 흘러나온다. 가상의 한국은 실제 한국보다 반 박자 빨리 걷는 실제 한국이다. 반걸음의 오차가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