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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시를 읽으면, 생각은 같아도 느낌은 얼마나 다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김용락의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창작과비평사)는, 이런 명명이 가능하다면, ‘몰락 이후의 시’에 속한다. 몰락 이후란 80년대의 사회변혁의 열기에 불을 지폈던 이념의 몰락을 가리킨다. 홍두깨처럼 닥친 90년 이후, ‘몰락 이후의 시’는 적지 않다. 이념의 몰락과 더불어 시의 음조도 한숨과 신음의 악몽 속으로 쫓겨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 한숨과 신음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가령, 얼마 전에 이 지면을 통해 다루었던 윤재철의 『생은 아름다울지라도』에는 억제된 피울음이 가득하다. 그 피울음은 몰락의 상황을 어느 다른 무엇으로도 해소하지 못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견디는 정직성으로부터 새어나온다. 시인은 다른 것은 모른다. 다만,..

생에 대한 물음이 곧바로 생의 붕괴를 확인하는 절차가 되는 때가 있다. 장례, 이별, 파산, 시한부 생명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나락에 빠지게 하는 수렁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그 수렁에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어떤 두께의 암흑 속에서도 빛을 향해 튀어오르고야 마는 특이한 순발력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누벨 옵쇠르바퇴르’지는 후천성 면역 결핍증 환자들이 남은 생애 동안 건강했을 때는 전혀 맛보지 못했던 강렬하고 행복한 삶을 누린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가 있다. 그들은 죽음마저도 하나의 생의 기획으로 만듦으로써 죽음의 공포를 이겨냈던 것이다. 하지만, 생의 붕괴가 어느 순간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항구적이라면? 다시 말해 우리의 일상 그 자체가 온통 삶의 붕괴이고 죽음이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