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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남진우씨의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문학과지성사, 2006)는 “내 낡은 모자 속에서 / 아무도 산토끼를 끄집어낼 수는 없다”(「모자이야기」)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서 시인은 말한다. “내 낡은 모자 속에 담긴 것은 / 끝없는 사막 위에 떠 있는 한 점 구름일 뿐.” 우리가 씨의 ‘낡은 모자’를 시의 비유로 읽는다면, 이 시구들은 하나의 시론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선언에 의하면 시인은 변신의 시가 아니라 유랑의 시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변신의 시란 은유로 가득 찬 시를 뜻한다. 그리고 은유로 가득찬 시란 대상과의 합일이 때마다 충만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물론 유랑의 시에도 은유에 대한 꿈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변신의 시에서와는 달리 거기에는 즉각적인 동화가 일어나..
※ 아래는 2023년 대산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이다. 오늘 시상식이 열렸길래 블로그에 올린다. 1차 독회에서는, 예심에서 올라 온 10권의 시집을 검토하였고 2차 독회에서 4권의 후보작을 선별하였다. 김기택의 『낫이라는 칼』, 손택수의 『어떤 슬픔은 함께 할 수 없다』, 황유원의 『초자연적 3D 프린팅』, 황인찬의 『이걸 내 마음이라고 치자』(가나다 순)가 저울 위로 올라갈 대상이 되었다. 최종 심사에선 우선 두 시집을 추린 후에 두 번째 투표에서 수상작을 건지기로 하였다. 심사위원회는 4권의 시집이 모두 수상을 하기에 합당하다는 점에 동의하였다. 네 시집은 저마다 한국 시의 특징적 부면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김기택씨는 언어 세공의 극점을 향하고 있으며, 손택수씨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