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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예심에서 올라 온 11편의 소설 대부분은 만화적 상상력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만화는 현실의 축약과 변용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무미건조한 일상을 건너뛰도록 하는 힘이 있지만, 그러나 그 대가로 현실로부터의 검증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김엄지의 「돼지우리」, 이정옥의 「치코의 숲」, 김미선의 「미로」가 마지막 후보작으로 거론되었다. 「돼지우리」는 현대인의 욕망을 돼지의 탐식에 빗대어 풍자하는 힘이 돋보였다. 그러나 작위적 설정이 진실에 다가가는 걸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치코의 숲」은 유한자인 인간 삶의 근본적인 이원성, 즉 창조가 파괴가 되고 선과 악이 등을 맞대고 있는 상황을 환상적 형상들을 통해 추구한 소설이다. 데미안적 주제와 수미일관한 구성이 돋보였다. 그러나 동원된 형상..

김엄지의 『 폭죽무덤』(현대문학, 2020.02)은 무엇보다도 그 문체가 스며내는 감각적 느낌들만으로도 놀랍다. 이런 문장을 보라: “흰 개가 장미로 100번길을 혼자 걷는 것을 보았다. / 개의 걸음이 가볍고 빨랐다. / 그 흰 개는 은색 목줄을 질질 끌고 갔다. / 쇠줄이 바닥을 긁는 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걸었다.” 이 대목은 아주 투명하고도 깔끔한 묘사를 보여준다. ‘장미로’를 걷는 ‘흰 개’, 그 개의 은색 목줄,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흰색으로서의 ‘바람’, 그것들이 서로 부딪치고 장미로를 긁는 소리. 그러나 이 묘사는 단순히 아름다운 게 아니다. 거기에는 모든 것을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인물의 감각적 운동의 생동성이 여실히 나타나 있는데,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