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가난의 문화 (2)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아래 글은 2020년 6월 동인문학상 독회에 제출된 나의 작품 추천 의견이다.(조선일보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지만,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올린다.) 이수경의 『자연사박물관』은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의 대책없는 몰락을 꼼꼼히 묘사하고 있다. 불행을 야기한 물리적 사실들을 꽤 ‘조직적으로’ 배경에 깔고서, 그로부터 유발된 한 가족의 절박하게 허둥거리는 마음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소위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것이 ‘현실을 열심히 좇다가 보면 필경 현실에 배반당하고 만다’는 힘없는 사람들의 실제 현실을 적확하게 반영하는 것이라, 이보다 더 핍진한 걸 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걸핏하면 문제 해결의 전망을 보이라고 억압하는 정치꾼들의 기세야말로 ..
목구멍 옛날에 나를 켕기게 만들던 우리 식구 목구멍 하나 둘 셋 그것을 채우던 내 노동 일년 이십년 한평생 뼈빠지게 고생하던 옛날에 울분 삭히던 가슴에 쐬주 고이던 뻥 뚫린 구멍 하나 둘 셋 지금은 내가 채울 목구멍이 세상 도처 내 몸보다 크구나 제 혼자 허한 목구멍 자본가의 거대한 목구멍 정치가의 거대한 목구멍 역사의 거대한 목구멍 그러나 켕기지 않네 채우기에 노동자 이 가슴 모자랄 뿐이네 그것이 노동자 나를 구멍보다 거대하게 키우고 성장이 넘쳐 목구멍도 뒤집히고, 경사나겠네 (김정환 시집, 『노래는 푸른 나무 붉은 잎』, 1993, 실천문학사)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가난을 잊고 살고 있다. 80년대에 소비사회가 시작되고 90년대에 문화 산업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일상적 향유는 무람없는 일이 되었다. 봉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