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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추천사 등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5. 09:01

본심에 올라 온 여섯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 거꾸로 말할 수도 있겠다는 야릇한 느낌에 빠졌다. 착상과 구성은 전자에 속했고 전개와 마무리는 후자에 속했다. 제재를 거의 엇비슷하게 극빈 혹은 비정상적인 삶에서 취해 온 것은 오늘의 사회와 문화를 반영하는 것인지 아니면 소설적 영감의 고갈을 가리키는 것인지 가늠하기가 아리송했다.

포장이사 직원과 버림받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쓴 임택수 씨의 은 소재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에 비해 사건이 밋밋하고도 작위적이었다. 여죄수들의 동성애를 다룬 이숙희 씨의 등나무 여자는 생각의 흐름을 꼼꼼히 따라간 끈기가 돋보였으나 말씨와 어법이 서툴러 긴장감을 주지 못했다. 강인 씨의 영희는 죽지 않는다는 화끈한 살인극, 아니 차라리 살인의 상투적 버라이어티 쇼로 독자를 처음엔 놀라게 했고 나중엔 지겹게 했다. 죽어가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집착하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남녀의 문제를 다룬 한진숙 씨의 흰둥이는 개연성을 갖추었으나 절실성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왜 이 사건이 여기에 이 때 들어가야 하는지는 장래의 소설가들이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정금옥 씨의 데킬라 선 라이즈와 김이설 씨의 열세 살이었다. 데킬라...는 소설 전편에 거울 이미지를 심고 주체와 짝패 사이의 관계를 기묘하게 변주시켜 괴이한 낯설음의 세계를 만들려고 했으나, 그러한 착상과 구성의 존재 이유를 제시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매력을 주기보다는 매력을 잃어버리는 걸 목표로 삼고 만 꼴이 되었다. 노숙자의 세계를 다룬 열세 살은 낯설고 충격적인 정황들이 오히려 강렬한 핍진성을 띠고 있었다. 생략과 환기의 미덕을 잘 익히고 있는 깔끔한 단문의 문체도 글쓴이의 앞으로의 가능성을 기대케 하는 요인이었다. 다만 사회적 문제를 아이의 체험 안에 담는 것은 이제는 한 물 간 방법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선자들은 잠깐의 논의로 열세 살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에 수월히 합의하였다.(송기원정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