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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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추천사 등

2005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 평론 부문 추천사

비평쟁이 괴리 2022. 12. 5. 08:52

순간에 대한 숙고, 그리고 회환(回還), 몸의 언어로 시쓰기, 그리고 청동 방패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이 읽을 만하였다. 읽을 만했다는 것은 텍스트 분석이 비교적 적확하고 해석에 설득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윤대녕의 최근 변모를 다룬 순간에 대한 숙고, 그리고 회한은 윤대녕의 특이성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독특성으로부터 불가피하게 발생한 모순 그리고 그 모순을 돌파하기 위해 작가가 보여준 새로운 기투의 역정을 썩 일관된 체계로 짜 놓았다. 다만 이 체계를 가능케 한 관점은 상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즉 초월에 눈뜬 자는 현실에 깃들 자리를 찾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꽤 단단한 상식이지만 문학은 언제나 그 상식 너머로 건너간다는 것을 필자가 유념해주길 바란다. 실은 삶 또한 그러할 것이다. 삶을 세 개의 명제로 요약해서 끝낼 수는 없는 것이다. 몸의 언어로 시쓰기는 한국시에서 비교적 희귀한 흐름에 속하는 채호기의 시를 다룬 글이다. 채호기의 육체를 활동하는 정신으로서의 신체 즉 현상학적 현존의 장으로서 본 출발선은 매우 상쾌한 바가 있었고 그 관점에 따라 해석된 시구들도 글 안에서 온당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이 육체를 다른 육체와의 상호 교섭 관계 속에서 파악하여 그 교섭이 야기하는 고통과 불안에 대해서 주목을 한 것은 이 글의 논리적 치밀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로부터 곧바로 고통과 불안의 재현학을 이끌어내려 한 것은 그 논리가 스스로 자신에 대한 불안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멈춰 섰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글은 한 시인의 시적 운동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순수기술로 비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평론과 시 사이에는 육체적 교섭이 부재하게 되고 만 것이다. 청동방패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은 젊은 두 시인, 이장욱과 김행숙의 시 세계의 분석을 통해 기왕의 지배적인 시학과는 다른 시학을 꿈꾸어 본 글이다. 꿈꾸었다고 했지만 그 꿈이 움직이는 방식은 아주 작업적operative이어서, 첫째 일반적인 한국시와는 사뭇 다른 두 시인의 시 세계를 정밀한 분석을 통해 적절하게 해석해내는 데 성공하였고, 둘째 두 사람의 아주 다른 시학을 소개함으로써 시학의 변모에는 지배항의 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구도의 변화와 지평의 열림이라는 사건이 있다는 것을 일깨웠으며, 셋째, 이 상이한 시학들 사이에는 치열한 길항관계가 있음을 해명함으로써 인간 활동의 모든 근원에 놓여 있는 모순의 원리를 환기시키는 한편으로, 넷째, 젊은 시인들의 시학에, 아니 젊은 시인들을 통한 한국시의 변모에 고유한 까닭이 있음을 궁리케 한다. 그 때문에 글의 시작은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꽤 치밀한 논리를 담고 전개되었고, 이론을 통해 배운 시학이 아니라 시 자체들로부터 솟아난 시학을 구성하는데 성공하였다. 마지막 추천작으로 선정한 소이이다. 추천이 보류된 두 글의 필자도 작건 크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격려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