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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자콥의 영면

비평쟁이 괴리 2013. 4. 29. 03:43

프랑수아 자콥(François Jacob)2013421일 파리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프랑스 언론에 일제히 실렸다. 1965년 앙드레 르오프André Lewoff, 자크 모노Jacques Monod와 함께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수상한 그는, 자크 모노,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과 더불어 분자생물학의 발견을 진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길로 이끈 뛰어난 과학철학자였다. 한국에는 후자의 두 사람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들보다 정돈된 추론력과 문학적인 감식안을 가진 분이었다. 생명의 진화가 우연한 요소들의 우발적 조합의 연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그의 브리콜라쥬bricolage개념은 인류가 그에게 진 영원한 부채이다(이 개념을 그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야생적 사고La pensée sauvage[1962]에서 가져왔다. 미국의 Science [No.196, 1977]지에 발표할 때에는 Tinker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가 내게 주었던 감화를 되새기며 그가 남긴 말 중 하나를 음미해 본다.

나는 두 개의 문화, 즉 문학적 문화와 과학적 문화의 분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 과학자들의 저술은, 마치 갈비에서 기름기를 도려내듯이, 주도면밀하게 정서를 도려낸다. 그 결과 우리가 보는 건, 완벽하게 무미건조하고 단순하고 앙상한 물건이다.”(Bernard Pivot와의 인터뷰에서, Le Monde 2013.04.23.일자, Catherine Vincent의 기사에서 재인용.)

 

기사를 통해 새로 알게 된 사실:

(1) 그가 20세이던 1940, 독일 점령 기간 중, 런던에서 창설된 프랑스군에 합류하였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어 외과의사가 될 꿈을 접고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꾸어야 했다는 것.

(2) 그의 네 자녀 중, 한 사람이 유명한 출판사 Odile Jacob을 창립한 Odile이라는 것.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

키에슬롭스키Krzysztof Kieslowski베로니카의 이중생활La double vie de Véronique(1991)빨강Rouge에서 여주인공으로 나왔으며, 2011년 그의 오빠와 함께 앨범, 나는 헤엄할 줄 알아Je sais nager를 출시했던 여배우 이렌느 자콥Irène Jacob과 그의 오빠 재즈 기타리스트 프란시스 자콥Francis Jacob이 그의 아들·딸이 아니라, 물리학자 모리스 자콥Maurice Jacob의 아들·딸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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