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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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설가들의 존재론적 고뇌

비평쟁이 괴리 2023. 2. 7. 17:27

젊은 세대의 작품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이 봄에 발표된 작품들만을 나열한다 해도 그것은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내가 관심 있게 읽은 것들은 김영하 「거울에 대한 명상」(『리뷰』 95 봄), 김찬기 「시인 또는 세시 반」(『현대문학』 95. 4), 김환 「비막(飛膜)을 펼쳐라」(『문학과 사회』, 95 봄), 박성원 「사라세니아」(『세계의 문학』, 95 봄);「이상(異常), 이상(李箱), 이상(理想)」(『황해문화』, 95 봄), 배수아 「검은 늑대의 무리」(『현대문학』, 95. 3);「랩소디 인 블루」(『소설과 사상』, 95 봄), 한강 「저녁빛」(『문학과사회』, 95 봄)이다.
이 목록(우리는 여기에 송경아를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은 20대 중반, 30대 초반의 신진 작가들이 한국문학의 분포도에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물량성만으로 젊은 세대의 문학을 논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 젊은 세대의 문학이 종래의 소설들과 어떤 차이를 긋고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 이들의 문학은 얼핏 이전의 소설들의 주된 관심사, 즉 문학과 사회 사이의 긴장과 갈등에 대한 성찰과 고뇌를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적인 것의 몰락과 문화적인 것의 팽대로 특징지워지는 90년대의 상황 속에서 문득 텅비어버린 문학의 공백을 이들은 아주 개인적인 체험과 감각적인 감수성으로 메우려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성기와 성애에 대한 거리낌 없는 묘사, 고독과 집착, 그리고 사유를 거부하고 그것을 감각적 탐닉과 잡학적 지식으로 대체하는 것 등은 이 젊은 세대의 아주 표나는 특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며, 이들은 실제 저마다의 독특하고도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가령, 박성원의 현란한 사변과 한강의 칙칙한 반추를 어떻게 같은 천칭 위에서 잴 수가 있을 것인가? 또한, 김환의 소설은 지금까지 한국문학의 주변에 흩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던 풍자 소설 형식을 새롭게 재구성․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윤대녕의 신비 소설적 시도와 함께,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지, 이른바 신세대적 감수성의 문제로 접근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장르의 영역을 넓히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수성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도로에 그칠 무익한 시도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작품 속에 공통적으로 관류하는 어떤 의식 혹은 감정을 찾아낼 수는 있으며, 그것은 얼핏 보이는 바와는 달리 아주 사회적인 문제에 속한다. 그 사회성은 이 젊은 세대가 세대 그 자체의 문제에 끈질기게 발 묶여 있다는 데에 그 공간학적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것은 적어도 세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이들의 등장은 독서인구의 확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독서 인구의 팽창은 오늘날 한국의 경제적 풍요와 그에 따른 문화 소비 체제의 근본적인 개편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것은 단순히 독자의 수량적 확대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새로운 독자 계층의 형성을 뜻하게 되었다. 즉, 종래의 문학 속에 포화되어 있던 정치적 이념과 사회적 진실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우면서 개인적 실존의 문제의 형태 및 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책을 찾는 독자들이 늘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젊은 작가들이 외면적으로 보여주는 세계는 바로 이 새로운 독자층의 관심과 상응하고 있으며, 그 점에서 그들은, 그들보다 약간 앞선 작가들, 즉 채영주․신경숙․윤대녕․구효서․박상우․하창수 등이 오직 글쓰기의 능력에만 의지하여 자신을 알리기 위해 고투했던 데 비해, 훨씬 손쉽게 반향을 얻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리면서 더욱 자유롭게 그들의 주제를 펼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개인적인 문제에 집착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 자체로서 사회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모든 실존적 문제는 사회적인 것이며, 모든 사회적인 것은 실존적인 것이다. 그들의 사회적 부적응과 그에 따른 사적 비밀공간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집착은 이들과 이들의 독자 세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독특한 사회적 위상과 연관되어 있다. 그 사회적 위상은 삶의 지평에서의 가능성의 부재란 말로 요약될 수 있을 터인데, 즉, 현실 생산의 나이에 진입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들만의 몫으로 남겨진 것은 없다는 무참한 상황 속에 그들이 놓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가령 그들은 장래의 선택에서부터 그것의 성취에 이르기까지, 아니 심지어 반항마저도 아버지의 후원과 보호 아래 놓여 있으며(김찬기, 한강), 한결같이 “총통이 하사하신 굴레라는 제복, 황국의 신민이라는 군복, 의무감에 사로잡힌 죄수복”(박성원)을 입고도 그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패잔병처럼 쫓기며 떠도는 존재들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이들은 80년대 초․중반의 젊은 작가들이 보여준 기성 세대에 대한 도전과 같은 비슷한 양상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그 뿌리는 사뭇 다르다. 80년대 작가들의 아버지 부정이 군사 정권의 폭압에 꺾이고 만 기성 세대의 무기력에 대한 도전이었다면, 오늘의 젊은 세대의 아버지 부정은 끈질기게 권력을 놓지 않고 있는 기성 세대에 대한 공포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아버지 부정은 법․권력으로서의 아버지의 자기모순적 양상(불륜, 자식에 대한 감정적 집착)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들의 자기 의식은 아버지를 대체하려는 욕망을 분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적자가 될 수 없는 저주받은 사생아의 자멸적 감정으로 나타난다.
그들만의 사적 공간은 그래서 태어나는 것이며, 성기 묘사와 성애가 그 사적 공간을 범람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의 혼음적이고 동성애적인 성애는 단순히 풍속의 문란 혹은 성의 개방이라는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아버지의 이름을 법의 절정에 세워놓는 근본적 사회 구조, 즉 가족 관계에 대한 부인이라는 함의를 띠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성의 사회적 생산의 성격을 탈생산적인 것으로 망가뜨리려는 하나의 비극적인 실존적 내기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적 공간이 결코 새 삶의 지평을 그들에게 열어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정직한 젊은 작가들은 온몸으로 느낀다. 그들은 “사적 소유가 존재하더라도 그건 당신의 공간이 아니다. 당신이 이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당신의, 당신만의 공간은 없다. 절대 없다”(박성원)는 것을 알고 있으며, “좀더 따뜻하고 안전하고 자극적으로 섹스를”(김영하) 할 공간은 단지 환상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죽음을 대가로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상의 날개짓은 “아파트 일층 아스팔트 위에 희고 곧은 뼈 하나만 그 정표로”(박성원) 남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영향력이 온 세상의 내․외면을 온통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로부터 탈출해 온 새로운 세상이 실은 아버지를 모방하는 온갖 아이들로 붐비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새 공간에서 인물들은 윤간을 당하고(김영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배수아)는 듯이 평온하기만 하다.
그래서 배수아의 귀에서는 끊임없이 늑대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며, 한강과 박성원의 인물들은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는, 심지어 막다른 골목에 마주쳐 중단되지도 못하는 하염없는 질주를 하는 것이다. 그 늑대의 환청이며 그 질주는 그대로 젊은 작가들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집약하고 있는 바, 그 질주는 아버지로부터의 탈출이면서 동시에 어디에도 은신의 공간은 없다는 절망이 내지르는 외침이자 비명이며, 그 환청은 “신문에서는 절대로 읽을 수 없는 이야기”를 어쨌든 사회적 방식으로 해야만 하는 자의 분열적 심리를 그대로 가리킨다.
그러나 소설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 소설의 사회성의 마지막 차원은 바로 그러한 아버지와 나의 대립과 분열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 새로운 극복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노력에 놓여 있다. 사회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거부하는 것 자체를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 낡은 사유에 대한 무정부주의적 혁명을 꿈꾸면서 박성원은 아버지의 삶의 뿌리(근대의 출발기, 李箱의 지점)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모험을 통해 아버지 세대의 삶과 자신 세대의 삶의 만남 아니 얽힘의 자리를 추적하고 있으며, 한강은 질주의 한 복판에서 그 아버지의 세계 속에서 파멸한 자의 “목쉰 고함 소리”와 아버지의 “절규하는 듯한 음성”을 동시에 들으며, 배수아는 그들만의 버림받은 공간 안에 희망의 몸짓들을 새겨넣으려고 애쓰고 있고 김영하는 그들 세계의 사적 공간이, 실은 사회적 세계의 모방적, 다시 말해 경쟁적 거울에 불과하다는 쓰디쓴 인식과 함께 그 거울이 깨져 그 자신의 상처가 되고 마는 과정을 충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양상이 어떠하든, 이제 젊은 세대의 작품들을 하나의 중요한 소설적 경향으로서 대우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감정의 노출과 대립의 설정을 넘어서서 그들의 존재론적 고뇌와 행동의 의미에 대한 정직한 인식을 요구하는 한편으로 스스로 그것 자체를 성찰의 장 속에 포함시키면서 아버지와 자신을 동시에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오늘의 젊은 소설들은 아무리 주목을 받아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 1995. 5, 현대문학, 젊은 소설가들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