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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알긴 뭘 알아 알긴 뭘 알아 안다는 거지 혼자서는 모르니까 혼자서는 안되니까 끼리끼리 모여 안다고 우기는 거지 없는 것도 있고, 보지 않은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보았다고 우기면 본 거지 예수는 하느님이라고 (혹은 사람이라고) 예수는 독생성자라고 (혹은 장자라고) 예수는 부활했다고 (혹은 소생했다고) 예수는 재림한다고 (혹은 환생한다고) 끼리끼리 모여 그렇다면 그런 거지 모르는 건 모르는 것이고 몰라되 되는 건 몰라도 되는 것인데 그건 죄가 아니니까 그저 괄호 속에 넣어두면 되는 것인데 저승에 가서나 알 일들까지 (정말 저승이 있는지는 또 누가 알아) 끝끝내 살아서 알려고만 그러니 어쩌랴, 법에 걸리는 일이 아닌걸 어쩌려, 돈이 생기는 일인걸 그게 진짜 사는 맛인걸 (김형영 시집, 『새벽달처럼』, 문학과..
交感 몇 해 전 요즈음 나는 잘 먹힌다고 쓴 적이 있는데, 그러면서도 행복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저 빼앗기고 있다는 기분이었는데 오늘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한 엄마를 보면서 고함치도록 행복하였다 그는 정말 잘 먹히고 있었다 아이가 배가 고플 때쯤이면 젖이 찌르르 신호를 보낸다고 했다 이건 분명 먹이다가 아니라 먹히다이다 먹히다는 고함치도록 행복하다이다 그러니 모유가 제일이다! 그대 오늘 사랑이 고픈가 이 몸이 지금 찌르르르 신호를 보낸다 (정진규 시집, 『도둑이 다녀가셨다』, 세계사, 2000) 인생은 고달프다. 그래도 잘 나간다고 시인은 ‘뻥친다.’ 그걸 “잘 먹힌다고” 표현하고 다녔다. 뻥칠 때의 의미는 ‘세상일이 내게 잘 들어맞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속뜻은 내가 ‘되는 일 하나 없이 남..
雨水 雨水라는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면서 무심히 창을 여는데 길 건너편 슬레이트 지붕 아래로 달려들 듯 노을이 흘러가고 가는 바람이 흘러 가고 볼이 붉은 아이가 간다 누가 스위치를 눌렀는지 어두운 창이 밝아지면서 추녀가 높이 솟아오르고 불분명한 시간들이 산허리를 타고 강둑 버드나무숲 쪽으로 휘어져간다 (최하림,『풍경 뒤의 풍경』, 문학과지성사, 2001) 밖에 따사로운 봄비가 내리는 줄 알았나 보다. 계절의 이름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심히 창을 여니, 비가 아니라 노을이 흘러가고 바람이 부는 소리였다. 그런데 노을과 바람은 봄비처럼 촉촉이 대지에 스며들지 않는다. 노을은 “달려들 듯 흘러가”며 지붕 아래의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러나 “대동강물이 풀리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고 사람들이 ..
밤과 별 밤이 세계를 지우고 있다 지워진 세계에서 길도 나무도 새도 밤의 몸보다 더 어두워야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더 어두워진 나무는 가지와 잎을 지워진 세계 위에 놓고 산을 하늘을 더 위로 민다 우듬지 하나는 하늘까지 가서 찌그러지고 있는 달을 꿰고 올라가 몸을 버티고 있다 그래도 달은 어둠에서 산을 불러내어 산으로 둔다 그 산에서 아직 우는 새는 없다 산 위에까지 구멍을 뚫고 별들이 밤의 몸을 갉아내어 반짝반짝 이쪽으로 버리고 있다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문학과지성사, 1999) 오규원이 99년에 상재한 시집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는 시인이 수년 전부터 주창해 온 ‘날이미지’의 전모를 보여주는 시집이다. 날이미지의 기본 발상은 일체의 관념으로부터 해방된 순수한 사물의 움직임을 ..
나의 誤植 바람이 기어 온다 성큼성큼, 바람 틈에 태어난 나는 하늘땅이 비틀거리는 오식이다 햇살 한줄기 뿌리 깊이 박힌 誤字, 오자는 눈이 부시게 시리다 황홀하다 오식 사이사이 심심찮게 드나드는 바람은 사투리다 나는 오늘 지우개가 닳고 없다 (조영서 시집, 『새, 하늘에 날개를 달아주다』, 문학수첩, 2001) 조영서 선생이 27년 만에 시집을 상재하였다. 시들과 함께 뒹군 시인의 땀내가 진하다. 그 땀내를 맡아 보니, 시인은 느릿느릿 그러나 시 한편마다에 온 몸을 던지며 살아 왔다. 그것을 두고 “성큼성큼” “기어”왔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가 성큼성큼 기어 온 세월은 시쓰기를 충동하는 바람을 계속 맞으며 살아 온 세월이다. 그런데 그는 오직 오식만을 심으며 살아 왔다. 하나의 완전한 시, 정식으로서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