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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소수문학이여, 궐기하라!

비평쟁이 괴리 2020. 6. 5. 08:14

최근 구한 한국문학작품들 중 상당수는 예전에 나온 책들의 재출간본들이다. 당대에 주목받았거나 판매가 잘 되었던 것들을 포장을 개비(改備)해서 내놓는 것들이다. 그런 책들의 상당수가 메이저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시방은 생존 모드인 모양이다. 20세기 말에 불어닥친 세계화 바람은 2013년 전후에서 한국의 문학독서시장을 완벽하게 환골탈태시켰다. 한국문학/세계문학이라는 한국작가들에게 꽤 쏠쏠했던 분할 구도가 폐기되고 단일한 세계 시장 안에서 한국문학과 일본문학과 유럽문학과 미국문학이, 더 나아가 문학과 사회학과 인류학과 문화학과 문화로 포장된 소비상품들이 단일 종류의 매대 위에 놓여 경쟁하게 되었다. 그 결과는 한국문학의 무한정한 패주이다. 본격문학은 유럽문학에 밀리고 대중문학은 일본문학에 뺨 맞고 있고, 그냥 문학은 문화물들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느라고 정신이 없고, 전위문학은 학문을 빙자한 세태 만평들에게 조롱당하고, 소위 순문학은 각종 프레임으로 갑주를 두른 언어체들 사이에 끼어 찍소리도 못한다.

지금 한국문학은 가령 작가가 TV에 출연했거나, 사적인 혹은 유별나게 공적인 일로(그게 요즘엔 같은 거로 보이는데) 이러쿵저러쿵 미디어의 화제가 되었거나, 아니면 사고를 쳤거나 해야, 좀 팔린다. 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두고봐야 하리라.

여하튼 살아남겠다고, 살아남으려면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고 하는 데 시비곡직을 따지는 것도 벽창호같은 짓이리라. 다만 한국문학만 취급을 하는 게 아니고 앞에서 언급한 유행 상품들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 터라 어려움에 처하긴 커녕 승승장구타령조의 콧노래를 부르는 출판사들마저도 굳이 한국문학 코너에서까지 절박한 눈동자의 홍등을 켤 것까지 있을까, 의심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낡은 물건을 젊은 독자들의 취향에 맞게 재물질화해서 얻어지는 의의도 있을 것이 틀림없다. 옛것의 풍취와 가치를 오늘날의 사람들이 수용한다는 것은 그들의 지성을 풍성하게 만들고 그들의 삶을 반성적으로든 상상적으로든 확장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그러니 나는 한국의 중심 출판사들이 그런 일에 매진하느라고 한국문학의 앞날을 개척해야 한다는 의무를 유보하고 있는 걸 혀 차는 걸로 넘기려 한다.

아니다. 섭섭해 할 일이 아니다. 생각해보니, 이 사품이란 그동안 메이저 문학의 무릎에 목이 눌려서 숨을 쉴 수 없었던 소수문학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문학의 앞날이란 오늘의 문학 구도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태동함으로써 열릴 것이니, 그럴 새로움의 목화송이들을 구차한 생의 꾀죄죄한 먼지더미들과 뒤섞어서 보관하고 배양해 온 것도 바로 가녀린 목소리로 존재를 알리고 있는 소수문학들이 아닐 것인가? 그러니 마침내 때가 온 것이다. 전국의 소수문학들이여, 궐기하라!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발동될 때가, 마침내, 기어코, 속절없이 도래했다고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