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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후아로즈(Roberto Juarroz) 혹은 침정 상승(沈靜上乘)의 시 본문

울림의 글/언어의 국경 너머에서 만난 이 한 편의 시

로베르토 후아로즈(Roberto Juarroz) 혹은 침정 상승(沈靜上乘)의 시

비평쟁이 괴리 2011. 8. 13. 23:20

  El ojo de la soledad

vigila al amor.

 

El amor no debería ser vigilado,

pero a veces devasta lo que ama,

asuela lo que no ama

o se destruye a sí mismo.

 

E1 amor siempre ha sido un peligro para el hombre,

quizá también para los dioses.

El amor necesita vigilancia.

Hasta la flor necesita vigilancia.

 

Y sólo la soledad inquebrantable

que se afinca en nosotros como un duro vigía

puede salvarnos de esas furias

mientras custodia sus abismos.

 

Además ese ojo de concentrada soledad

¿no es también otra especie de amor,

su forma más recatada y cierta?

 

 

고독의 눈길은

사랑을 감시한다.

 

사랑이 감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 사랑은 그가 사랑하는 것을 망쳐놓는다

그가 사랑하지 않는 것을 쓸어버리기도 하고

혹은 스스로 망가지기도 한다

 

인간에게 사랑은 언제나 위험한 것이었다

어쩌면 신들에게도 그러리라.

사랑에는 감시가 필요하다.

꽃조차도 감독이 필요하다.

 

그리고 견고한 망루처럼 우리 안에 뿌리내리고 있는

불굴의 고독만이

우리를 저 격정들로부터 구할 수 있다,

그것이 저의 심연을 시찰하는 동안.

 

게다가 이 골똘한 고독의 눈길

역시 또 다른 사랑이 아니겠는가?

가장 신중하고도 반듯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겠는가?

 

(열네 번째 수직의 시 Decimocuarta poesia vertical, 스페인어-불어 대역본, José Corti, 1997의 제 7고독의 눈길 El ojo de la soledad )

 

로베르토 후아로즈(1925~1995)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코로넬 도레고(Coronel Dorrego)에서 태어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했으며, 후에(1971~1984) 그 대학의 도서관장을 지냈다. 페론이 집권하자 망명해서 수년간 유네스코의 라틴 아메리카 10여개국에 관한 전문가로 활동하였다. 1958년에서 1965년 사이에 시전문지 창조 시=création Poesía = Poesía를 주도했다. 1962년 그의 시가 처음으로 페르낭 베르헤센에 의해 벨기에에서 불역되었을 때 르네 샤르(René Char)는 번역자에게 진짜 위대한 시인un vrai et grand poète”을 보았다는 편지를 썼다. 로베르트 후아로즈는 사후 시집까지 포함해 전부 14권의 시집을 상재했는데 똑같이 수직의 시poesía vertical’’라는 제목을 붙이고 순차적으로 순서만 매겼다.

그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그윽하고 서늘한 기분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소개된 시를 통해 알 수 있겠지만 시행 하나 하나는 단순하고 평범하기만 한데 다 읽고 나면 어느새 새로운 깨달음에 가슴이 맑게 정화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가 사망한 직후 쓴 추모의 글에서 옥타비오 파즈가 한 다음의 말은 그의 시를 아주 적절하게 요약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의 짧은 시들은 집중성과 투명성으로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정확하고 즉각적인 언어로 젊은 시인은 현실의 미처 몰랐던 모습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시들은 사유하는 감각을 통해 정신의 영역에 말을 건네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언어가 아니라, 그의 시 각 편들이 우리에게 발견케 해주는 통찰이었다”(우물과 별, 199549). “가장 소박한 수단들을 통해 낯선 것, 예기치 않은 것을 일깨우는시의 비밀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다시 가만히 읽어 보면 시행 하나하나가 평범하고 단순하다는 애초의 인상이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시행의 뜻이 평이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은 사물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그리고 각 시행 들 사이에는 모든 것은 저와 다른 곳에서 시작한다Tout commence ailleurs”는 그의 시행이 가리키는 바와 같은, 사태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통찰이 개입해 있다. 가령, 3연에서 인간에게 사랑은 언제나 위험한 것이었다라는 쉽사리 표현될 수 없는, 그러나, 듣고 나면 고개를 금세 끄덕일 수 있는 한 진실의 포착 다음에 이어져 나온 어쩌면 신들에게도 그러리라는 놀라운 발언을 보라. 그리고는 그 논리적 귀결로서 사랑엔 감시가 필요하다는 명제를 제시한 다음, “꽃조차도 감독이 필요하다는 경험적 진실로 넘어가 사실상 셋째 행의 명제가 사유의 결과가 아니라 차라리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실임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분명코, “오직 시의 도구들만을 사용해 사유의 밭을 다져서 결코 사유의 길이 아닌 길을 내었다라는 로제 뮈니에 Roger Munier(후아로즈 시의 전문 불역자)의 지적이 가리키는 바와 같은 길을 통해 이루어진, 정확하게 집중되었으며이면을 들여다보는 통찰들은 부단한 운동 속에 놓여 자신의 메시지를 정착시키는 대신 거꾸로 비워내면서 위로 상승한다. 그의 시의 한 구절을 빌리자면, “신들보다도 더 가벼운 노래로 말이다. 상승이 거듭될수록 삶에 대한 인식은 점점 더 깊어진다. 다시 옥타비오 파즈의 말을 빌려보자. “후아로즈에게 위대한 시인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다. 보다 명료하고 보다 귀한 다른 말이 필요하다. 그는 드높고도 심오한haut et profond’ 시인 이었다.” 드높음과 심오함 사이에는, 그러나, 등위접속사가 놓일 게 아니다. 드높음이 곧 심오함이기 때문이다. 침잠이 곧 상승이고, 따라서 그 상승에 대해 침정하다라는 형용사를 붙일 수 있을 듯하다. 번역은 스페인어를 모르는 탓에, 아르헨티나 태생이며 프랑스어로 시를 쓴 뛰어난 시인, 실비아 바롱 쉬페르비엘Silvia Baron Supervielle이 번역한, 불역을 근거로 하였다. 그의 이력에 대한 정보 및 기타 그에 관한 이런저런 글들을 http://perso.club-internet.fr/nicol/ciret/bulletin/b5.htm에서 얻었음을 밝혀둔다. (쓴날: 2002.09.22, 발표: 현대시20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