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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이번 심포지엄에서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원래 함께 기획되었던 글이 하나 더 있었다. 김현 선생의 『시칠리아의 암소』에 대한 연구로서, 이상길 교수가 「철학의 복화술로서의 문학비평 – 김현의 푸코 연구에 관하여」라는 제목으로 『불어불문학연구』 가을호(정확히는 123호)에 발표하였다. 이상길 교수의 논문을 읽으며 비로소 선생의 말년 저작들에 대한 온당한 접근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마음 그대로 ‘기뻤다.’ 그는 김현의 『폭력의 구조 – 르네 지라르 연구』 및 『시칠리아의 암소』(미셸 푸코 연구)에 대한 그동안의 논문들이 1980년대 말부터 불어닥친 편향된 푸코 수용에 의해 왜곡되어 왔다는 것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으며, 그 편향을 교정하기 위한 모색으로 글을 채우고 있다. 나는 그 글에 즉각 호응..
올해는 김현 선생이 돌아가신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내 요량으로는 이제 김현 선생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가 시작되어야 할 때다. 그동안 이곳저곳에서 많은 김현론이 쓰여졌고 나도 얼마간의 글을 발표하였으나, 아직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른바 ‘본격적인’ 이해는 한국 지식인들의 지성사의 맥락 속에 김현 선생을 위치시킬 때 방향이 잡히게 될 것이다. 특히 유교적 정신 세계의 몰락, 아니 몰락이라기보다는 잠복이라고 해야 하리라, 그 잠복 이후에 개시된 중요한 정신적 흐름들의 길항이 어떻게 변주되어 갔느냐를 포착하는 게 핵심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겸하여, 올해 두 종류의 추모 사업을 치렀다. 하나는 김인환 선생님을 비롯, 홍정선, 김연권, 이철의 교수와 함께 김현 선생의 나날의 일..
이 글은 2020년 6월 동인문학상 독회에 제출된 나의 의견 중, 문학장 일반에 대한 의견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지만,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올린다.) 지난 30여년의 한국소설에 널리 퍼진 기술법 중의 하나는 심각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고 제재적 다변화를 통해서 암시의 분말을 퍼뜨려 정서적 동조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사소한 것들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던 저 옛날 리얼리즘의 방향과 정반대로 나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리얼리즘이 근본적으로 현실에 대한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면, 오늘의 경향은 현실 앞에서의 무기력증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러한 무기력증은 현대인들의 일반적 심리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기에 그것 자체가 진실성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아래는 조선일보 박해현 기자가 졸저 『‘한국적 서정’이라는 환(幻)을 좇아서』(문학과지성사, 2020)에 관해 질의한 데 대한 답변이다. 조선일보 2020년 5월 22일자 인터넷 판에 실렸으며,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도 싣는다. -김소월에 대한 당신의 주장은 이러했다. “한국의 근대시는 1925년에 출현했다. 김소월이 시집 ‘진달래꽃’을 그해 출간했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은 그동안 심각한 오독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김소월은 ‘민요시인’이란 호칭을 싫어했다. 김소월은 전통시의 계승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전통적인 주제를 활용하여 근대적인 시를 한반도의 언어문화의 장 안에서 개발하려고 했다.” 당신이 김소월 재발견을 주장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기존의 문학 연구와 교육에서 김소월 ‘오독’의 원..
※ 이 글은 『연세춘추』1705호(2013년 5월 6일)에 발표된 글의 원본이다. 원본과 발표본 사이에는 대략 2:1 정도의 분량의 차이가 있다. 얼마 전 ‘사이’의 새 음악과 뮤직 비디오가 발표 되었다. 「강남스타일」에 미쳤던 세계인들은 이제 새로운 자극을 하나 더 얹게 되었다. 「젠틀맨」의 선물시세를 바짝 올리며 미리 흥분하는 반응들이 곳곳에서 이미 터진 바 있다. 이 열광은 그런데 원인이 알쏭달쏭한 것이다. 앞은 제껴지고 뒤는 꼬인 기묘한 음색의 도입부가 말머리처럼 생겼다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그게 말춤의 모든 비밀을 설명해주는 못한다. 엉덩이를 들썩거리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저 몸으로 감탄사를 발하고 있을 뿐이다. 가수는 알까? 왜 자신이 떴는지? 도널드 덕처럼 은전더미 속에서 헤엄할 제작자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