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촘촘한 묘사가 돋보이는 좁은 S/F- 김보영의 『고래눈이 내리다』 본문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6회 여덟 번째 독회의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 황지윤기자의 요약 기사 및 심사위원 전체의 독회평을 읽을 수 있다.
김보영의 『고래눈이 내리다』(래빗홀, 2025.05)는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하나는 그의 소설들에 체험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군말이 많지 않고 사건 중심의 묘사가 대종이다. 이 묘사를 돋보이게 하는 건 두 가지 작동이다. 하나는 여기에 묘사된 사건들이 상당수 작가 자신의 체험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것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인간적 감성의 투영이다. 게임, 음악, 엣지 디바이스, 3D 프린팅으로 만든 기기, 빔(Beam), Death의 인카네이션, 외계생명, 비인간 지적 생명 등등 SF에 등장하는 중심인물들이지만, 그들의 심리적 상태의 표현은 인간 세계의 일상 용어들 속에 녹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감정의 추이조차도 인간적인 감성을 따르고 있다. 다른 하나의 작동은 묘사의 촘촘함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묘사를 보자.
에어로크가 둔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음매에 끼어 있던 곰팡이가 눌려 터지며 내 내벽에 검은 얼룩을 남겼다. / 호버가 앞장섰다. 머리에 단 헤드라이트가 내 안을 밝혔다. 그 뒤로 마찬가지로 잠수부처럼 헬멧에 헤드라이트를 단 두 사람이 뒤따라 들어왔다. 뒤따르는 둘은 산소통만 맨 가벼운 작업복 차림이었다. 모두 헬멧이 어두워 얼굴은 흐릿했지만 호버는 빨강 도색, 나머지는 파랑과 노랑 옷이라 구분하기는 쉬웠다(p.218).
세 명의 처리반이 “고장난 거주구”의 “에어로크”를 열고 들어가는 장면의 묘사다. 단순한 묘사 같지만, 동작의 디테일들이 균일한 리듬을 타고 흐르고 있다. 그리고 가령 두 번째 문장이나 마지막 문장에서 볼 수 있듯, 움직임이 일으키는 섬세한 변화도 포착하고 있다. 이런 촘촘한 묘사를 통해 독자는 시시각각의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야말로 이 작품의 매력이자 장점이다.
이와 같은 인간적인 특성 때문에 이 작품들이 인간계의 사건에 SF의 의장을 두른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 이 작품들은 SF의 본질을 내장하고 있다. 즉 인간중심주의적 시각을 벗어나 있다는 것. 외계 생명이나 사이보그, 지구 내 동식물, 심지어 장소의 시점에서 세상을 포착함으로써, 인류세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그 너머에 대한 동경을 북돋는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건의 폭이 좁고, 감정의 흐름에 사적 밀도가 너무 강하다는 점이다. 가령 이런 진술을 보자.
……사실 나는 늘 내가 사는 이 세상을 낯설게 느꼈다. 이만하면 그래도 살 만큼 살았는데도. 늘 내가 여기에 잘못 끼워진 조각 같아서, 숨만 쉬어도 쑤시고 움찔거리기만 해도 마음 어딘가가 긁히곤 했다(p.262).
세상에 대한 위화감을 표현하는 대목이다. 표현 자체로서는 충분히 공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표현은 다음 문장에 의해 그 사연이 밝혀진다.
내게 딱 맞는 세상을 뒤로하고, 내가 원래 잘 끼워져 있었던 곳을 박차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도 부대끼거나 거스르지 않는 세상을 내버리고. 그저 낯선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익숙지 않은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호기심과 홍분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새처럼 날아 이곳에 왔다. / 그러니 나는 여기 머물고자 한다. 이곳이 내 세상이니. 이 낯섦이 내가 원한 것이니. 이 삐걱거림이 내 갈망이었으니 저 너머의 내가 바란 것이 바로 내 이 삶이니. (p.267)
낯선 것에 대한 탐구가 주인공의 꿈이었던 것이다. 그가 위화감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머무는 소이이다. 이는 “지금까지 아무도 가 보지 못한 곳을 향한 당당한 나아감”이라는 S/F적 비전을 충실히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남는다. 우선 위화감의 해명이 마지막 결론이 된다면 이는 어리둥절한 일이 된다는 것이다. 다음, 느낌과 기억 사이의 연관이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왜 건너 온 다음에는 기억이 사라지는가? 그리고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문턱을 넘으면 어떻게 전 기억이 돌아오는가? 또한 문턱을 넘은 사람은 왜 주인공과 같은 각성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이런 문제들이 제기되지 않는 것은 이 작품이 일종의 구조적 협소함에 갇혀있기 때문일 수 있다. 다 씌어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는 까닭이다.
※ The English version of this article can be found at: A Narrow S/F Highlighted .. : 네이버블로그
A Narrow S/F Highlighted by Dense Description Kim Bo-young’s *Whale Eyes Are Falling*
※ The following text is a review from the eighth reading session of the 56th Dongin Literary 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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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version française de cet écrit est à : Un S/F étroit où se disti.. : 네이버블로그
Un S/F étroit où se distingue une description minutieuse« Il neige des ... » de Kim Bo-young
※ Le texte ci-dessous est une critique issue de la huitième séance de lecture du 56e concours li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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