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제14회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 윤흥길 선생의 강연을 듣고 본문

바람의 글

제14회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 윤흥길 선생의 강연을 듣고

비평쟁이 괴리 2020. 10. 30. 17:39

지난 화요일(2020.10.27.) 14회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 강연회가 연세대학교 문과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렸다. 박경리문학상 시상식이 원주에서 진행된 다음 주에 신촌에서 치러지는 연례행사다. 올해의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는 윤흥길 선생이다. 1회 때 최인훈 선생이 수상한 이후, 한국 작가로는 두 번째이다. 나는 신촌행사를 주관하는 인문학연구원과의 인연의 여진이 아직 남아 있어서 사회를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2006년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던 한불수교120주년기념 한불문인 좌담회’ 때(나는 그때 연구년으로 파리 체류 중이라서, 구경을 갔었다.) 이후로 뵙지를 못했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에 선뜩 수락한 것이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로 실제 방청객으로는 행사주관자와 수상자, 그리고 미리 예약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강연장에 참석했고,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유튜브로 촬영해 실시간 방영하였다. 문학상을 주관하는 토지문화재단에서는 작년에 돌아가신 김영주 이사장님의 자리를 물려받은 김지하 선생의 둘째 아들 김세희 신임 이사장이 참석하셨다.

수상자 강연의 제목은 천재와 범재였는데, 내용은 윤흥길 선생 자신이 범재에 불과함을 스스로 확인하고 절망한 바 있는데,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았으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 자세를 한결같이 유지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주제만 봐서는 상당히 평범해 보였으나, 이야기의 실제는 아주 구체적인 사연들을 담고 있었고 예거된 일화들마다 의미를 곱새기게끔 할만큼 여물진 데가 있었다.

이를테면 어느날 마비증이 와서 병원에서 뇌 CT를 찍었는데, 의사가 필름을 한참동안 쳐다보길래 심각한 병인 모양이다, 라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들여다보길 그친 의사가 하는 말이 종양은 없고 다만, 창조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대개 전두엽 부위가 유달리 발달해 있는데, 선생님 경우는 일반인하고 별로 차이가 없어서……라고 해서 헛김을 뺐다는 것이다. 그냥 우스꽝스러운 얘기인 듯하지만, 실은 불행에서조차 특별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교묘하게 헤집고 있다.

한데, 이보다 더 기억해둘 만한 것이 있었으니, 온라인으로 받은 질문 중에 문학과 시각 미디어(영화)의 차이에 대한 견해를 묻는 게 있었는데, 윤흥길 선생은 주저없이 문학은 오로지 혼자 하는 것이고 다른 미디어들은 집단 협력을 통해 하는 것이라서 무언가를 카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처음엔 엉뚱한 대답이라고 생각했으나 곰곰이 씹어보니, 이야말로 문학의 핵심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로 착상에서 쓰기, 그리고 독서 시장에서의 유통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개인성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예술 장르는 문학(그리고 미술)에 국한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생산과 수용의 전 과정에 걸쳐서 작가가 타인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설은 공동체의 기억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읽어 줄 독자들을 끊임없이 의식한다. 다만 결정적인 것은 이 모든 타자들이 작가의 주관성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거나 혹은 거꾸로 완벽하게 미결정의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소설의 독자는 원칙적으로 무한하여, 소비자와의 유통 형식을 미리 만들어 두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독자를 특정하고 쓸 때 그 작품은 대체로 통속화되거나 은어화된다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 미결정의 상태가 모든 최종적인 쓰기의 결심결정을 작가의 몫으로 놓아두는 것이다. 반면 여타 예술은 타자와의 접촉의 형식들이 고정된 프레임들에 의존하고 있어서 예술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매순간에 이미 소비자(혹은 그 대리인으로서의 상업 매체)의 개입이 발생하니, 순수한 의미에서 작가만의 작업이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그런 예술에도 이른바 1960년대 프랑스의 작가주의영화에서처럼, 그런 타자의 형식을 미결정으로 유보하면서 고독한 창조적 작업에 집중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존재의 일반적 조건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여하튼 그러니 문학적 글쓰기라는 노동은 얼마나 고독한 것인가? 윤흥길 선생은 자신의 소설가로서의 고단한 생애를 그 말로 비켜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발언이 즉각적으로 튀어 나왔다는 것은 작가가 그 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해와서가 아니라, 그의 경험이 즉석에서 반응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리라. 그 반응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고독을 감당하기로 작심한 작가에게만 그만의 글쓰기의 완성이 허용될 거라는 무시무시한 장르신()의 계명이리라.

 

덧붙여 생각한다면 이런 작가의 막막한 글쓰기에 최적의 대화 마당의 역할을 한 것은 평론들이었다. 그것은 평론 역시 타자로서의 작가를 언제나 무한의 지평에 열어놓고(미결정으로) 작품을 읽어나가기 때문이다. 이 상호 간에 공평하게 이루어진 대타적 미결정의 전제가 작품과 평론으로 하여금 모든 것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놓는 허심탄회한 상호주관적 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평론의 순수성 대신에 출판사의 편집주의 혹은 언론사의 장식주의가 개입하게 되어 평론이 그 출판사 혹은 언론의 의도에 복무하게 되는 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그것이 오늘날 거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형편이니, 평론이 점점 경직화되고 사소화되는 현상은 거기에 기인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거의 극단에까지 치달아, 출판사들이 저마다 앳된 평론가들을 일부러 골라, 그런 게임의 말()로서 활용하는 게 빤히 보이는데, 젊은 평론가들이 몰라서 그러는지 알고도 그러는지 그 안장에 넙죽넙죽 올라타는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괜히 생각이 삼천포로 빠졌다. 여하튼 윤흥길 선생이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가차이 만나고 있을 때조차 축전을 띄울 일이이라. 코로나 시대이니까, 사회적 거리만큼이나 전파적 거리가 우리들의 마음을 애틋하게 하지 않겠는가? 강연 때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박경리 선생이 처음부터 후배의 작품을 좋아해, 미리 연락하고 정을 주었다 하니, 처음 듣는 인연이 신기할 뿐이다. 박경리 문학과 윤흥길 문학 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찾아보아야 할 건가? 여하튼 박경리 선생이 후배 작가에게 활인의 문학을 하라 부탁하였다는데, ‘활인은 그 명칭만으로도 소중해 보이고, 까다롭지만 절실한 숙제가 즐기차게 흘려보내는 점착성의 호소에 마음이 차츰 무게를 쌓기 시작한다.

엉뚱한 생각인데, 사위가 그이의 옆집에 사는 도중에 생명을 보듬어야 한다고 수십 년을 외치고 다녔는 데도, 고인의 정신세계는 여전히 인간을 중심에 놓았던 모양이다. 아니 그게 아니라 활인활생명의 뜻을 포괄한다고 누가 말할지 모르겠으나, 활인을 생명살리기라고 부르는 것과 생명살리기를 활인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간단히 건너뛰지 못할 어떤 차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