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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찾아서

비평쟁이 괴리 2014. 2. 5. 22:51

지난 해 1114~18일 기간에는 문학의학학회의 손명세 교수 부부와 이병훈 교수가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겸해서 방문하였다. 그 분들과 함께 근처의 몇 군데를 구경 다녔는데, 17일에는 유럽 최초로 의료 교육기관이 설립된 몽펠리에Montpellier(바로 여기가 라블레Rabelais가 의사 수업을 받은 곳이다)를 거쳐 발레리Paul Valéry해변의 묘지La cimetière marin로 유명한 세트Sète로 갔다. 당연히 해변의 묘지에 가서 발레리의 시구를 음미해보고 싶어서였다. 세트는 육지 안으로 깊숙이 파인 내해에 작은 배들이 빼곡 들어차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자주 바다로 놀러나간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예전에 에릭 사티Erik Satie가 태어난 옹플뢰르Honfleur에 갔을 때는 내해가 둥그렇게 파여서 그 둘레에 식당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이곳의 내해는 길쭉한 직선으로 아주 멀리 이어져 있었다.

내비게이터가 가르쳐주는 대로 해변의 묘지에 도착하니, 천기()는 넘을 것 같은 묘지들이 한없이 가두리를 넓혀 나갈 듯한 형국으로 나란히 그리고 층층이 배열되어 있었다. 바로 앞에 주차를 하고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간 다음 해변을 보니, 마침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바람이 잉잉거리고 저 너머에서 바다의 파도가 꽤 억센 표정으로 제 기운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일렁이고 있었다. 해변의 묘지의 그 유명한 시구, “바람이 분다, 기어코 살아보자꾸나를 외치고 싶은 충동이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치솟아 올라오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몸의 반응이었다. 벌써 손명세 교수는 꽤 도취하여 갈매기처럼 외쳐대었는데, 오호라, 바다에는 메아리가 거주하지 않아, 순식간에 가는 물방울들로 흩어져 흔적없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태양에 눌리고 바다에 압도당했던 발레리의 심정이 그 때문이었지 않았을까?

그렇다. 여기 온 김에 무슈 발레리에게 인사를 하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간간히 세워져 있는 이정표는 분명 발레리의 무덤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발레리 가문의 분묘는 나타나지 않았다. 왼쪽 중간 끝에 아비뇽Avignon 연극제를 창설했던 장 빌라르Jean Vilar의 무덤은 바로 찾을 수가 있었다. 장식이 많았다. 그러나 발레리의 무덤은 묘지 전체를 두세 번 뱅뱅 돌았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 그곳을 방문한 프랑스인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손가락으로 장소를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원하던 걸 마침내 찾아낸 사람은 발레리에 환장한 듯이 방방거렸던 세 남성이 아니라 억지로 따라나온 듯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던 손명세 교수의 사모님이신 전미선 교수였다. 여인의 섬세한 직관의 승리 앞에서 남자들의 거드름이 깨갱거리는 순간이 왔던 것이다. 여하튼 발레리의 유골은 발레리 가문의 분묘에 있지 않고 그라시Grassi가문의 분묘에 들어 있었다. 그 분묘 앞의 돌 정면에 Paul Valéry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서 그걸 알아낼 수 있었다. 그 무덤 바로 앞에 긴 벤치가 놓여 있었다. 아마 발레리를 찾아 온 사람들에게 잠시 앉아 시인에 대해 묵상하라고 놓아둔 것 같았다. 나중에 또 이곳에 올 일이 있으면 벤치만 찾으면 될 터였다. 이렇게 빤한 것을! 그러나 눈이 먼 자들은 어떤 쉬운 표지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세 사람의 장님은 무엇에 눈이 먼 것이었을까? 벤치에 앉아 지친 눈을 껌벅이고 있자니, 아까 손가락의 묘기를 보여주었던 프랑스 양반들이 다가왔다. 그들도 가장 명징한 의식의 시인에게 눈도장 찍으러 온 것이다. 그 양반들에게 왜 발레리가 그라시 가문의 분묘에 들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라시는 발레리 어머니의 성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 드디어 모든 게 명징해졌다! (역시 세트 출신인 음유시인, 조르쥬 브라센스Georges Brassens의 무덤은 근처의 다른 묘지에 있었다. 거기까지 가 보지는 못했다.)

묘지를 나와 바로 옆으로 발레리 박물관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온 김에 박물관 구경을 하고 가야지. 기대보다 훨씬 알찬 감상이었다. 유명한 화가는 많지 않았으나 그림 하나하나가 다 보기에 좋았다. 그리고 이층에서 자화상을 비롯해 발레리가 직접 그린 그림들을 보았을 때 감동은 만수위까지 차올랐다. 혹시 세트에 구경 가실 일이 있는 분들은 묘지만 보시지 말고 꼭 박물관도 들르시길. 게다가 박물관을 설계한 기 기욤Guy Guillaume은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의 제자랍니다.

박물관을 나와 바다 제방으로 나갔을 때는 비가 조금씩 흩뿌리고 있었다. 나는 황혜경이 바다에 던져 달라고 맡긴 그의 첫 시집을 꺼냈으나 제방의 돌들이 쌓인 너비 때문에 곧 포기하였다. 나중에 깔랑끄Calanques나 니스Nice에서 숙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손명세 교수는 박물관에서 준 해변의 묘지영역본을 들고 연신 낭송해 대었다. 바람이 분다. 기어코 외쳐야겠다!

 

 

손명세 교수 부부와 이병훈 교수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 해변의 묘지를 번역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품었으나 의외로 꽤 까다로운 대목들이 많았다. 게다가 다른 일들을 미룰 수가 없어서 해변의 묘지는 잠시 마음의 무덤 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요즈음 잠시 여유가 생겨 그 긴 시를 번역해 보았다. 아직 초벌 상태이고 의미가 분명하게 파악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다 공개할 형편은 아니지만, 마지막 세 연은 그럭저럭 모양이 된 것 같아, 아래에 적어둔다. 태양의 뜨거운 침묵과 바다의 캄캄한 은닉에 압도당해 신음을 하던 화자가 마침내 몸을 활짝 열어젖히며 생의 의지를 분출하는 대목이다. 가장 유명한 시구인 마지막 연의 첫 행, “Le vent se lève!... Il faut tenter de vivre!”를 어떤 분은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또 다른 분은 바람이 분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로 번역하였는데, 나는 문맥에 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달리 번역해 보았다. (쓴날: 2014.02.05.)

 

아니야, 아냐!... 일어서야 해! 도래하는 시대에 있어야 해!

부숴버리시오, 내 육체여, 생각에 잠긴 형상을!

들이키시오, 내 가슴이여, 바람의 탄생을!

숨 내뿜는 바다의 서늘함이

내게 영혼을 돌려준다... 오 짭짤한 힘이여!

파도처럼 달려가 산 채로 솟구치자꾸나!

 

그래! 망상을 타고 난 대해(大海),

표범 가죽, 그리고 구멍난 망토여

수천이나 되는 태양의 우상들이여,

침묵과도 같은 파란 속에서

네 반짝이는 꼬리를 문

네 푸른 살에 취한 절대의 히드라여,

 

바람이 분다!... 기어코 살아보자꾸나!

   세찬 기운이 내 책을 열었다 닫았다 해대는구나.

포말진 파도야, 바위 속으로부터 솟구쳐라!

날아라! 온통 황홀해진 페이지들이여!

뽀개라, 파도들이여! 뽀개라, 명랑한 물들아,

삼각돛이 쪼아대는 이 조용한 지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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