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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홍승용 교수가 완역한 아도르노의 『미학이론』 본문
아도르노(Th. Adorno, 1903-1969)의 대작, 『미학이론Ästhetische Theorie』(SuhrKamp, 1970) (사후 출판, 편집: 그레텔 아도르노 (Gretel Adorno): 아도르노의 부인, 롤프 티데만 (Rolf Tiedemann): 아도르노의 오랜 제자이자 친구)를 홍승용 교수가 마침내 완역하였다. 1984년 첫 번역판이 나온지 41년만의 일이다. 초판의 마지막 부분에 위치한 판권란을 보니 책값은 4,800원이었다. 이번에 나온 완역판의 가격은 42,000원이다. 1984년과 비교해 물가가 8.7배 올랐으니, 책 가격은 조금 비싸졌다. 하지만 역자의 정성이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니 더 많은 독자들이 역자가 탄탄하게 보완한 이 책을 많이 구매해서 지식 능력을 훌쩍 인상하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경사를 계기로 예술의 가장 중요한 성질을 돌이켜 보게 할 아도르노 예술관의 몇 가지 포인트를 소개한다. (이는 Google NotebookLM의 도움을 받아서 작성한 것이다.)
- ▶ 편집자들이 재배열 작업에서 강조하려는 원칙은 무엇인가?
편집자들이 『미학 이론』의 재배열 작업에서 강조하려 한 원칙은 병렬 구조적 서술 원칙입니다.
이러한 원칙은 아도르노가 자신의 철학적 사고 방식을 서술 형식에 반영한 결과입니다.
1. 병렬 구조적 서술 원칙 강조
편집자들은 전체적인 재배열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 책이 지닌 병렬 구조적 서술 원칙(parataxis narrative principle)을 좀더 명확하게 강조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아도르노가 자신의 작업 방식에 대해 설명했던 내용과 일치합니다. 그는 철학적으로 ‘제일원리(first principle)’는 아무것도 없다는 자신의 명제로부터, 논증적 연관을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방식 대신 일련의 부분적 복합체들로 전체를 조립하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적 복합체들은 마치 동심원처럼 같은 비중을 지니며 병렬적인 부분들로 기술되어야 하며, 부분 복합체들의 연속이 아니라 짜임관계가 이념을 산출하게 됩니다,.
2. 연역적-위계적 서술 거부
편집자들이 병렬 구조를 강조한 목적은 이 책의 서술을 연역적-위계적 연관에 결코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전통적인 서술 방식은 선후의 연속(선후의 연속)이 불가결하지만, 아도르노는 이러한 전통적인 의미의 배치가 자신이 다루는 실제 대상과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편집자들은 재배열 작업을 통해 이 책이 위로부터의 연역적이고 위계적인 연관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3. 단편적 성격 유지
이러한 작업 과정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토르소 상태로 남게 되었는데, 편집자들은 단편적 성격과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단순한 우연으로 인해 미완성품이 된 것에 만족할 수 없다고 보면서도, 아도르노가 보여준 진정한 충실성을 고려하여 텍스트의 단편적 성격을 감추거나 건드리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 ▶ 아도르노의 미학에서 예술의 자율성과 사회적 맥락의 변증법적 관계는 무엇인가?
아도르노 미학에서 예술의 **자율성(Autonomie)**과 사회적 맥락(사회적 성격) 사이의 관계는 단순한 이분법적 관계가 아니라 복잡하고 변증법적인 관계를 이룹니다. 이 관계는 예술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1. 예술의 양면적 성격: 자율성과 사회적 사실
아도르노는 예술 작품이 자율적이면서도 사회적 사실(fait social)이기도 한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고 강조합니다.
• 자율성의 기원과 파괴: 예술의 자율성은 인도주의 이념에 근거하여 예술 속에서 형성되었으나, 사회가 점점 더 인도적이지 않게 됨에 따라 그 자율성은 파괴되었습니다.
• 자체보존 원칙의 승화: 예술은 경험적 현실에 존재하는 자체보존(sese conservare)의 원칙을 예술 작품들의 자체존재(Selbstsein)라는 이상으로 승화시킵니다. 예술 작품들은 경험적 현실과 분리됨으로써 고양된 존재가 됩니다.
2. 변증법적 관계의 구조와 매개
예술의 자율성과 사회성은 서로 긴장하면서도 내적으로 얽혀 있으며, 예술은 이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비로소 사회적 의미를 얻습니다.
• 사회적 저항으로서의 자율성: 예술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사회와의 소통이 아니라 극히 간접적인 저항에 있습니다. 예술은 자율적인 것으로서 비로소 사회에 대한 반대 입장을 취하게 되는데, 이는 기존 사회의 규범에 따르지 않고 자체 내에서 결정체를 이룸으로써 사회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 무기능성(Unfunktionalität)의 사회적 기능: 예술 작품이 사회적 기능을 지닌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예술 작품들의 무기능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술 작품들은 마법에 걸린 현실과의 차이를 통해 현존하는 것이 올바른 자리, 즉 제자리에 놓이게 되는 상태를 부정적으로 구현합니다.
• 사회적 노동의 반영: 예술 작품들은 사회적 노동의 산물이기도 하며, 예술 속의 미적 생산력은 유용한 노동의 생산력과 동일하고 자체 내에 동일한 목적론을 지닙니다. 미적 생산관계는 사회적 생산관계의 침전물 또는 복사품입니다.
• 사회적 모순의 내재화: 해결되지 않은 현실의 적대 관계들은 예술 작품들에 그 형식의 내재적 문제들로서 다시 나타납니다. 예술 작품 속의 긴장 관계들은 순수하게 결정체를 형성하며, 외부의 사실적 표면을 탈피함으로써 실제 본질과 만납니다.
• 진리내용과 사회: 예술 작품의 진리내용(Wahrheitsgehalt)은 가장 진보적인 의식의 구현으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배받고 있는 사람들과 결합한 무의식적 역사 서술입니다. 예술의 사회적 사상내용은 예술 작품이 소화하는 소재가 됩니다. 예술은 경험적 현실을 확정적으로 부정하면서도 그것에 어떤 가능성의 반사광을 던져줍니다.
3.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한계
예술의 자율성은 사회적 맥락을 비판적으로 반영하는 힘을 부여하지만, 동시에 예술의 한계와 이데올로기적 위험성도 내포합니다.
• 이데올로기적 측면: 예술은 자율적인 것으로서 이데올로기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데, 이는 예술이 사회 때문에 전율하면서도 사회와 거리를 둠으로써 사회를 방해하지 않고 내버려두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술은 아프리오리하게 긍정성을 지닌다는 점은 예술의 이데올로기적 이면입니다.
• 진리의 현상: 가상 없는 것의 가상으로서 진리를 지닌다는 점이 예술에서 참인 것입니다. 예술은 가장 치명적으로 위험에 노출될 때조차, 자체가 거짓일 수 없다고 표현함으로써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 예술의 한계: 예술 작품들은 경험적 현실을 탈피하고 싶어 하지만 매 순간 다시 경험적 현실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자체의 모든 요소들을 현실과 연결해 놓습니다. 예술 작품이 독자적인 상태에 머물게 되면 여러 분야 가운데 무해한 분야로서 그에 못지않게 훌륭히 통합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아도르노에게 예술의 자율성은 곧 사회적 참여의 가장 심층적이고 진정한 방식입니다. 예술은 사회적 현실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율성) 사회적 모순을 내재화하고 그것을 부정하는 형식적 구조를 구현합니다. 이 부정적 형상이야말로 사회적 진리(맥락)를 드러내는 핵심적인 증언입니다.
- ▶ 아도르노가 비판하는 현대사회의 특징은 무엇인가?
아도르노가 비판하는 현대사회의 특징은 **‘관리되는 세계’(verwaltete Welt)**라는 개념으로 압축됩니다. 이 개념은 그의 후기 철학적 논의에서 중심을 이루며, 특히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다루는 『미학 이론』 전반에 걸쳐 그 비판적 시각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아도르노가 비판하는 현대사회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총체적 지배와 사회 구조의 비합리성
• 총체적 지배: 현대사회는 **‘총체적 지배’**가 이루어지는 사회로 규정되며, 그 핵심은 피지배자들이 지배받기를 스스로 원하며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함으로써 사회 변혁의 가능성이 소멸된다는 점에 있습니다.
• 독점자본주의 사회: 이 사회는 독점자본주의 사회로, 노동자 민중의 욕구, 감각, 의식을 독점자본의 이익에 맞게 길들이는 조작이 이루어집니다.
• 궁핍의 지속: 현대사회는 고도의 생산력을 갖추어 당장 지구를 낙원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부조리하게도 여전히 궁핍 상태가 존속하고 야만이 확대재생산되며, 인류의 이성적 조직이라는 목적이 차단되었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2. 이데올로기적 도구로서의 문화산업
• 문화산업의 기능: 현대사회에서 문화산업은 대중 기만의 도구로 작동하며, 독점자본의 이익에 봉사합니다.
• 상품화와 표준화: 문화산업의 산물들은 천박하고 더 표준화되어 있으며, 공허한 시간을 공허한 것으로 가득 채우는 역할을 합니다. 이 문화 상품들은 관리되는 세계가 만들어놓은 굴욕당하는 사람들의 상태에 항거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그 상태를 확인할 뿐입니다.
• 욕구의 조작: 문화산업은 대중의 욕구를 조종하며, 사회적으로 현존하는 욕구에 부응하는 한 예술은 광범하게 이익에 의해 조종되는 사업이 됩니다.
3. 도구적 이성과 사물화된 의식
• 도구적 이성의 극대화: 현대사회의 비합리성은 장기간의 계몽 과정에서 자연 지배와 더불어 인간에 대한 지배의 합리성을 극대화한 도구적 이성의 산물입니다.
• 사물화된 의식: 지배의 방식 자체가 조작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지배적인 사회적 생산관계들의 전형이 됩니다. 이로 인해 사물화된 의식이 널리 퍼지게 됩니다.
• 예술의 위협: 이러한 사회적 조건 속에서 예술은 총체적 파국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며, 예술에 대한 논의는 관리되는 세계의 행정 업무의 우선성을 암암리에 추구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 ▶ 자연미, 예술미, 그리고 기술 개념이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에서 어떻게 구조화되는가?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에서 자연미, 예술미, 기술 개념은 단순한 미적 범주가 아니라, 예술의 역사적 지위와 본질을 규명하는 핵심적인 변증법적 구조를 이룹니다. 이 세 개념은 대립과 상호 매개 속에서 예술 작품의 객관화 과정 및 궁극적인 진리내용과 연결됩니다.
1. 자연미와 예술미의 관계: 부정과 실현
아도르노는 전통적인 미학에서 배제되었던 자연미(das Naturschöne)에 대한 성찰이 예술 이론에서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이 둘의 관계는 대립적이면서도 상호 의존적입니다.
• 대립 및 폭력으로서의 예술미: 예술 작품은 순수한 인공물로서 만들어지지 않은 것(das Ungefertigte)인 자연과 외관상 맞서게 됩니다. 예술 작품이 자연발생적인 것에 가하는 폭력과 연관된 상처를 자연미 개념이 건드린다고 보며, 예술은 자연에 대한 부정(否定)에서 나온다는 헤겔의 주장이 참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 실현으로서의 예술미: 예술은 자연미를 모방하지 않으며, 자연미 자체를 모방합니다,. 즉, 예술은 자연이 약속하는 바를 실현하려고 합니다. 예술 작품들은 자연 지배의 그물을 찢어버리며 자연에서 배우고, 자연미는 화해된 상태의 암호와 같을 것이라고 제시됩니다,.
• 자연미의 역할: 예술 작품들은 즉자(An sich)로서의 자연, 즉 만들어지지 않은 것인 물자체(Ding an sich)를 대변합니다,. 자연미는 보편적 동일성의 속박을 받는 사물들 속에 있는 비동일자의 흔적으로서, 예술 작품들에게 자체로부터 벗어나려는 충동을 느끼게 하는 근원적 요소가 됩니다.
2. 예술미와 기술의 관계: 합리적 객관화의 수단
**기술(Technik)**은 예술 작품을 인공물로 만들고 예술미를 가능하게 하는 합리적인 힘이자 예술적 생산력의 핵심입니다,.
• 객관화의 필수 조건: 기술은 예술 작품이 주체의 자의성에서 벗어나 객관성을 획득하도록 돕는 필수적인 수단입니다,. 예술 작품들의 진정성은 기술적으로 철저히 형상화되는 정도에 좌우되었습니다.
• 논리적 일관성: 기술은 예술 작품에 내재하는 합리적 계기의 유일하게 가능한 형태인 구성(Konstruktion) 개념을 통해 논리성 및 일관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합니다,. 예술 작품들은 기술을 통해 무목적의 합목적성을 지니게 되며, 자체 내에서 구문적으로 명료하게 표현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 언어적 성격을 띤다고 규정됩니다,.
• 진보의 척도: 예술에서 기술은 예술에 본질구성적이며, 재료 처리 능력의 진보는 예술의 진보를 논하는 중요한 측면입니다. 예술에서의 미적 생산력은 유용한 노동의 생산력과 동일하며 자체 내에 동일한 목적론(Teleologie)을 지닙니다,.
3. 기술, 자연미, 예술미의 변증법적 구조
기술은 자연을 지배하는 이성(理性)의 연장선상에 있는 개념으로, 예술미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성(합리성)과 미메시스(비합리성/자연적인 것)의 긴장을 심화시킵니다.
• 폭력과 화해의 양면성: 예술 작품들은 자연 지배의 이성을 자체 내에서 계승하고, 자율적 예술 작품들을 타율적 목적에 종속시키면 예술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 손상된다고 보지만, 이 기술적 합리성을 통해 자연을 지배하는 이성을 비판합니다,.
• 부정을 통한 자연의 회복: 예술은 자연 모방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체의 재료에 대한 무제한의 지배를 통해 지배되지 않는 것과 닮는다고 보며, 예술적 합리성은 자연 지배적 합리성이 외부에서 야기한 것을 보상하고자 합니다. 즉, 예술미는 기술적 합리성을 통해 자연미가 상징하는 손상되지 않은 상태의 본보기가 되는 역설적인 방식으로 자연을 구제하고 화해를 지향합니다.
• 기술의 자기 파괴: 기술을 통해 예술 작품들은 철저히 형상화되지만, 기술이 자체목적으로 되어 사물화된 기술로 발전할 경우, 작품의 내재적 합목적성은 외부의 목적형식과 모순되어 예술에 반대하는 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이는 합리성이 무의식적인 것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체이기도 하지만, 예술 작품이 궁극적으로 단순한 사물로 굳어버릴 위험을 내포합니다.
- ▶ 현대 예술이 경험적 현실, 전통적 미학, 진리 내용에 대해 제기하는 근본적 문제는 무엇인가?
아도르노의 미학에서 현대 예술이 경험적 현실, 전통적 미학, 진리 내용에 대해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은 현대 사회의 모순과 예술 자체의 변증법적 성격이 첨예화되면서 발생하는 난제들로 나타납니다.
1. 경험적 현실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 (사회적 속박과 부정성)
현대 예술은 총체적 지배가 이루어지고 영속적 부자유 상태에 있는 사회라는 경험적 현실에 의해 근본적인 위협과 모순에 직면합니다.
• 자명성의 상실과 부자유: 예술에 관한 모든 것이 자명성을 상실했으며, 예술 자체의 생존권조차 불확실해진 상황입니다. 예술이 예배 기능과 잔상들을 떨쳐버린 후 획득했던 자율성은 사회가 점점 더 인도적이지 않게 됨에 따라 파괴되었습니다. 예술의 절대적 자유는 전체 속의 영속적 부자유 상태와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 현실의 과도한 부담: 새로운 예술(현대 예술)은 경험세계의 과도한 짐에 눌려 환상(허구)에서는 재미를 찾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예술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과의 혼합을 피함으로써 오히려 존재하는 현실을 가차 없이 표현해야 합니다.
• 재앙의 모방: 현대 예술은 고난의 언어를 통해 현실의 어떤 것을 표현하는데, 고통과 무언의 고통에 대한 불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 모든 유쾌한 예술은 불의일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현대 예술은 재앙에 대한 사진술이나 가짜 축복이 아니라, 재앙의 힘이 사라지기를 기대하며 재앙과 동일시하는 태도를 통해 어두워진 객관적 상황에 대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극단적인 예술은 어두운 예술이며 그 기본 색조는 검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2. 전통적 미학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 (범주의 와해와 직관성의 위기)
현대 예술은 전통적인 미학적 범주들이 자명성을 상실하고 와해되는 역사적 상황에서 출발하며, 이러한 전통적 규범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자체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근본적인 난관에 직면합니다.
• 전통의 부정으로서의 새로움: 새로움의 범주가 19세기 중엽 이후 중심적인 것이 되었으며, 현대 예술의 진정한 개념은 전통 자체를 부정하는 데서 나옵니다. 예술의 반전통주의적 에너지는 온갖 것을 삼켜버리는 소용돌이가 됩니다.
• 가상과 조화의 위기: 예술이 추구하는 조화 개념으로부터의 해방은 가상(Schein)에 대한 반란임이 드러납니다. 전통적으로 미(美)를 형식적 배율이나 조화로 보았으나, 현대 예술은 추(醜)의 범주를 전적으로 역동적인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추의 변증법이 미의 범주까지 삼켜버렸다는 점에서 미 개념의 위기가 심화됩니다.
• 직관성 교의와의 충돌: 현대 예술은 증대된 정신화를 통해 발전했는데, 이는 예술의 직관성 교의와 충돌합니다. 전통적 미학은 예술을 **‘개념 없이 보편적으로 만족을 주는 것’**이라는 칸트적 규범에 따라 순수한 직관으로 파악하려 하지만, 현대 예술은 고찰의 노동을 요구하며, 감각적으로 직접적인 것(직관성)이 위축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는 미적 합리성과 미메시스의 변증법을 은폐하려는 전통적 미학의 시도와 대립합니다.
3. 진리 내용에 대해 제기하는 문제 (의미의 위기와 부정성)
예술 작품의 진리내용(Wahrheitsgehalt)은 예술 작품의 객관적인 의미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지만, 현대 예술은 이 진리내용마저도 위태롭게 만드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직면합니다.
• 객관적 진리내용의 모호성: 예술 작품의 진리내용은 개별 예술 작품의 수수께끼를 객관적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철학적 반성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술이 가상 없는 것의 가상으로서 진리를 지닌다는 점이 참이라면, 만들어진 것인 예술 작품이 어떻게 참일 수 있느냐는 형이상학적 물음이 중심을 이룹니다.
• 의미의 위기: 예술 작품은 무목적적인 한에서 내재적 목적론과 친화적이어도 목적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기존 현존재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거짓말이 된 시대에, 예술 작품은 의미를 구성하는 연관을 가차 없이 떨쳐버림으로써 의미의 위기에 처합니다.
• 절대적 부정성으로의 경사: 예술은 유토피아가 되어야 하지만 유토피아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율배반에 처합니다. 따라서 예술은 새로움의 절대적 부정성을 통해서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즉 유토피아를 말하게 됩니다. 이처럼 진리내용이 가장 진보적인 의식의 구현으로서 역사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예술은 화해의 가상을 단호히 거부하고 화해되지 않은 것 한가운데에서 진리를 고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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