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전체 글 (529)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말을 다루는 솜씨가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이는 대학 내의 문학 활동이 썩 활발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열기 속에서 새로움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대학생 문학은 본격문학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들이 그런 대학생 문학의 ‘소임’(?)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무언가 다른 언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세상을 바라보는 순진한 시선들 속에 끓고 있었다. 새로움에 대한 고심은 자주 작위성이라는 오류를 범하게 하기도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무리조차도 좋은 경험으로 작용한다. 6편의 시를 마지막 후보로 골라 본다. 「트레드밀」(참가번호 19), 「날개짓과 발버둥 중 더 고상한 걸 고르시오」(66), 「철」(74), 「별과 기름」(92), 「낙화」(95), 「숲지기」(96). ..
무제 인간의 삶에는 보상이 없다. 사는 것보다 더 하거나 덜 한 대가란 없다. 식물이든, 광물이든, 동물이든 빛나고 울고, 울부짖고 흐느끼는 그 모든 것. 코끼리의 찢는 소리 암소의 음메 소리 당나귀의 칭얼 소리, 뱀의 쉬익식 쉬익식. 울어봤자 소용없어, 그 소리 요란해도 한 사람을 죽음에서 꺼내지 못하네. 죽음은 의기양양. 웃음짓네. 오만히 흡족하여 이리 말하네. « 죽은 자들의 등 뼈 위에 너희의 쟁기를 얹거라. » L'existence humaine est sans prix sans plus ni moins de prix que tout ce qui existe végétal, minéral, animal tout ce qui brille, hurle, brame, gémi barrissement ..
정명환 역,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품은 재번역의 의의 한국의 번역문학은 지지부진하지만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것이 지지부진했던 것은 ‘재탕’을 폄박(貶薄)하는 한국인 특유의 순수주의와 번역에 대한 정책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런데도 그것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개화기 이래 전통적 사유틀의 붕괴로 인해 바깥 지식에 대한 욕구가 팽대(膨大)하였고, 또 그 욕구에 힘입어 바깥 나라의 외국어를 체득한 연구자들이 착실히 증가해왔기 때문이다. 이 지지부진과 꾸준함이 미묘하게 얽힌 상태로 한국의 번역문학이 도달한 수준은 외국 문헌의 ‘정확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요 근래의 몇 차례의 번역 논쟁을 통해 여전히 오역과 역서선정기준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제 3국어(일어나 영..
※ 아래는 2023년 대산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이다. 오늘 시상식이 열렸길래 블로그에 올린다. 1차 독회에서는, 예심에서 올라 온 10권의 시집을 검토하였고 2차 독회에서 4권의 후보작을 선별하였다. 김기택의 『낫이라는 칼』, 손택수의 『어떤 슬픔은 함께 할 수 없다』, 황유원의 『초자연적 3D 프린팅』, 황인찬의 『이걸 내 마음이라고 치자』(가나다 순)가 저울 위로 올라갈 대상이 되었다. 최종 심사에선 우선 두 시집을 추린 후에 두 번째 투표에서 수상작을 건지기로 하였다. 심사위원회는 4권의 시집이 모두 수상을 하기에 합당하다는 점에 동의하였다. 네 시집은 저마다 한국 시의 특징적 부면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김기택씨는 언어 세공의 극점을 향하고 있으며, 손택수씨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
※ 아래 글은 『매일경제』가 올해 출범시킨 '만추문예' 제 1회 시부문 심사평이다. 오늘 신문 지면에 발표되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장년 이후 세대에게 새로운 문학 등용문으로 등장한 ‘만추문예’가 시나브로 사그러들었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다시 뜨겁게 지피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오늘날 ‘문학’은 실로 긴요한 생명수가 아닐 수 없다. 문학의 역할이 ‘즐겁게 하면서 삿됨 없이 교훈을 준다’는 것은 기원전부터 전승된 한결같은 지언(至言)이다. 한데 작금의 시대를 횡행하는 ‘향락적 문화’는 오로지 즐거움만을 주는 데에 맹종하는데, 그게 기쁨의 진한 향기를 세상에 드리우기는커녕 오히려 만족을 얻지 못하는 데서 터지는 별별 분노로 북새통을 일으킨다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 그러니..
첫 잎사귀 너희들 내게 내미누나, 나무의 푸른 작은 손들을. 길가 나무의 푸른 작은 손들을. 낡은 벽돌담들은 군데군데 허물어져서 고가들의 퇴락을 드러내고 있는데. 너희들은 내게 내미는구나. 생울타리의 새싹들을. 작고 푸른 손가락들을. 어리고, 반짝이며, 맹렬히 생을 탐하는 조개모양 접힌 손가락들을. 낡은 벽돌담 너머로 너희들은 우리에게 몸을 내미는구나. 늙은 벽돌담은 말하네 : « 광풍을 조심하거라, 작렬하는 햇볕을, 번득이는 밤들을 조심하거라. 염소를, 송충이를 조심하거라 산다는 걸 조심하거라, 오 작은 손가락들아 ! » 푸른 작은 손가락들아, 발톱을 가졌지, 다정하지만 퉁명스러울 줄도 알지. 너희들은 오늘 아침 왜 늙은 벽돌담이 카상드르 [2]의 목소리를 내는지 잘 알고 있지. 보송송한 비단을 두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