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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연세문화상] 시부문 (윤동주 문학상)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3. 12. 5. 17:08

말을 다루는 솜씨가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이는 대학 내의 문학 활동이 썩 활발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열기 속에서 새로움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대학생 문학은 본격문학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들이 그런 대학생 문학의 ‘소임’(?)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무언가 다른 언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세상을 바라보는 순진한 시선들 속에 끓고 있었다. 새로움에 대한 고심은 자주 작위성이라는 오류를 범하게 하기도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무리조차도 좋은 경험으로 작용한다.

6편의 시를 마지막 후보로 골라 본다. 「트레드밀」(참가번호 19), 「날개짓과 발버둥 중 더 고상한 걸 고르시오」(66), 「철」(74), 「별과 기름」(92), 「낙화」(95), 「숲지기」(96).

「철」과 「낙화」는 호흡의 여울을 시의 자연스런 리듬으로 바꾸는 재주가 있었다. 「낙화」는 과거의 역사가 매우 추상적으로 도입되어서 막연한 느낌 속에 머무르고 있다는 결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철」은 어린 시절의 솔직한 경험을 토로하고 있는데, 그냥 과거에 머물러 있다. 시간이거나 반성이거나 바깥으로의 어떤 통로를 찾아야 하리라. 「트레드밀」은 기성세대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준비운동이 결국은 제자리걸음이 되고 마는 상황을 전하고 있다. 동원된 오브제들이 생경하면서도 참신하다는 게 장점인데, 그것들을 배열하는 기술은 매우 기계적이어서, 산 체험으로 느껴지지 않고 머리 안을 맴도는 항해로 보이는 게 흠결이다. 이런 한계를 보이는 작품들이 꽤 있었으니, 이 집단적 추세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별과 기름」은 상상의 범위가 넓고 능갈스럽다. 다만 멀리 뻗어나가는 상념에 스스로 도취한 듯, 주제가 응결되지 않는다. 물과 기름이다.「날개짓과 발버둥 중 더 고상한 걸 고르시오」는 대학생들이 흔히 겪는 헛된 꿈의 표현이다. 이 시의 묘미는 제목과 본문의 미묘한 밀당이다. 제목의 두 행위 중, 발버둥은 전혀 나오지 않고, ‘날개짓’의 추락만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서 추락한 날개짓이 바로 발버둥이었음을 읽은 후에 깨닫게 한다. 그러니까 제목은 일종의 속임수다. 이 시는 행동을 묘사하는 듯하면서 언어의 간계를 생각게 한다.

「숲지기」는 전력투구를 느끼게 하는 시이다. 세상을 숲으로, 다시 숲의 어둠으로, 어둠 속의 유령으로 인지하면서, 유령들의 횡행을 오늘의 문명 사회로 투사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세상의 전면적인 혼란 속에서 시를 쓰는 가녀린 시인의 위태로운 운명과 고독한 사투를 느끼게 한다. 그 사투는 결국은 비극으로 귀결할 것인가? 시는 절묘하게도 교향악을 도입하여 저항의 폭발음을 들려준다. 아쉽게도 마지막 두 행은 상투적이다.

「날개짓...」과 「숲지기」를 놓고 오래 고민하다가 「숲지기」를, 쓴 사람이 쏟아부은 정성에 좀 더 점수를 주기로 하여, 당선작으로 뽑는다. 아쉽게 탈락한 작품들도 저마다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정진을 바란다.

출처 : 연세춘추(http://chunchu.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