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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박목월(1917-1978)은 1939년 9월부터 1940년 9월까지 문장(文章)지에 5편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시인이 된다. “북에 소월이 있다면 남에 목월이 있다”는 찬사와 함께 화려한 출발을 한 그의 시적 이력은 그러나 곧 심각한 정치적 장애에 부닥치게 된다. 그가 등단한 시기는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이었고, 따라서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일제는 모든 시인·작가들에게 황민화정책을 옹호하는 작품을 쓸 것을 강요하고 한국의 시인들은 그 요구에 부응하여 친일 어용시인으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침묵을 해야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된다. 박목월은 그 두개의 선택을 모두 거부한다. 그는 그와 거의 같은 시기에 문장지를 통해 등단한 조지훈·박두진과 함께 ‘발표를 고려하지 않는’ 시쓰기에..
윤동주 탄생 100년이 되는 해이다. 시인이 1945년 2월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하고 같은 해 8월에 조선이 광복을 맞이한 이후, 윤동주는 한국인들이 가장 아끼는 시인으로 자리잡아 왔다. 연희 전문 동기 강처중과 후배 정병욱이 그의 유품과 유고를 보관하여 후세에 전달함으로써 그를 보듬는 마음이 물질적 상관물을 확보하여 오래 지속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특히 정병욱의 유고 보관의 사연이 극적이어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잘 알다시피 윤동주는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체포된 내력에 생체 실험을 당했다는 짐작이 얹혀 일제에 의한 민족적 수난의 상징이 되었다. 윤동주의 불운한 생애는 곧바로 한국인의 기구한 운명과 하나로 맞물렸다. 게다가 그의 시들은 한결같이 진솔한 구도의 심정을 담아 자주 독립을 향한..
※ 공지사항에서 언급해 놓았듯이, 오늘부터 『문신공방 ․ 둘』(2018)의 글들을 블로그에 올린다. 서문으로 쓰인 「2007년 가을의 결심」은 이미 블로그에 올려 놓았기 때문에, '카테고리'만 '사막의 글'에서 '문신공방 둘'로 바꾸어 놓았다. 아래 글은 오늘의 출발점이다. 이상은 1934년 7월 24일부터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烏瞰圖)」’ 연작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무슨 개수작이냐’는 독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보름 만에 중단해야 했다. 이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이상의 시는 어릴 적 교과서에 빠짐없이 등장해서 누구나 이 얘기를 한 두 어 번 들어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일반 독자의 반응과는 다르게 한국의 지식인 독자들은 이상의 시를 소중히 보듬고 아끼고 세상에 퍼뜨..
1950년의 한국전쟁이 왜 문제가 되었나? “세계적인 입장에서 볼 때 부차적이고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내란’이 일어났을 뿐인데, 서양의 지식인들이 왜 그리도 법석을 떨었을까? 무엇보다도 그 전쟁이 한국인들의 골육상쟁이기에 앞서서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냉전 체제의 시험장이자 파열구였기 때문이다. 그 시각에서, 한국 전쟁은 지구를 두 쪽으로 쪼갠 거대 이념의 사활을 건 싸움의 무대이자 또한 앞으로의 세계의 향배에 대한 상징적 지표로 기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념의 선택과 마주해 있던 서양 지식인들로 하여금 한국전쟁을 긴박한 눈길로 바라보게 하고 치열한 논쟁에 휘말리게 한 까닭이다. 정명환․시리넬리․변광배․유기환, 네 사람의 공동연구서(민음사, 2004)가 공들여 재구..
나는 책을 읽으며 세 번이나 생각을 바꿔야 했다. 그만큼 바타이유의 『저주의 몫』(조한경 역, 문학동네)은 괴이한 책이다. 괴이하다는 것은 아름답고 맹랑하고 놀랍다는 뜻이다. 우선 아름다운 것은 이 책의 곳곳에 숨어 있는 번득이는 표현들 때문이다. 가령 “우리는 실수를 마약처럼 복용한다.”(p.31)라든가, “사물은 외눈박이의 지배력을 행사할 뿐이며, 새로운 진실이 어둠을 타서 폭풍을 지배한다”(p.176), “자아 의식은 본질적으로 충분한 내밀성의 확보이다. 그러나 내밀성의 확보는 속임수이다.”(p.232)와 같은 비유, 잠언, 반어는 신화와 역사 그리고 삶을 오래 반추해 본 사람의 깊은 사유의 심연에서 솟아난 통찰들이다. 이런 지혜를 얻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
말을 다루는 솜씨가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이는 대학 내의 문학 활동이 썩 활발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런 열기 속에서 새로움은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대학생 문학은 본격문학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들이 그런 대학생 문학의 ‘소임’(?)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무언가 다른 언어를 만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세상을 바라보는 순진한 시선들 속에 끓고 있었다. 새로움에 대한 고심은 자주 작위성이라는 오류를 범하게 하기도 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무리조차도 좋은 경험으로 작용한다. 6편의 시를 마지막 후보로 골라 본다. 「트레드밀」(참가번호 19), 「날개짓과 발버둥 중 더 고상한 걸 고르시오」(66), 「철」(74), 「별과 기름」(92), 「낙화」(95), 「숲지기」(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