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말의 어울림이 삶의 각성으로 이어지는 시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말의 어울림이 삶의 각성으로 이어지는 시

비평쟁이 괴리 2023. 11. 23. 09:39

※ 아래 글은 매일경제』가 올해 출범시킨 '만추문예' 제 1회 시부문 심사평이다. 오늘 신문 지면에 발표되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장년 이후 세대에게 새로운 문학 등용문으로 등장한 ‘만추문예’가 시나브로 사그러들었던 문학에 대한 열정을 다시 뜨겁게 지피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오늘날 ‘문학’은 실로 긴요한 생명수가 아닐 수 없다. 문학의 역할이 ‘즐겁게 하면서 삿됨 없이 교훈을 준다’는 것은 기원전부터 전승된 한결같은 지언(至言)이다. 한데 작금의 시대를 횡행하는 ‘향락적 문화’는 오로지 즐거움만을 주는 데에 맹종하는데, 그게 기쁨의 진한 향기를 세상에 드리우기는커녕 오히려 만족을 얻지 못하는 데서 터지는 별별 분노로 북새통을 일으킨다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다. 그러니 바야흐로 “박제가 되어버린” 문학의 ‘천재’를 부활시켜야만 할 절박한 까닭이 있다. 이제는 즐거움을 곰곰이 되새기며, 깨달음의 알곡들을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이상李箱)는 훈련이 필요한 때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심사 대상은 141인의 익명의 후보들이었다. 전반적인 인상은 현실에 대한 체험적인 묘사가 두드러진다는 것이고, 그 점에서 감각의 즉각적인 표출보다는 삶에 대한 차분한 관조와 반성이 인상적이었다. 
이 중에서 열 사람을 고른 후, 다시 네 분으로 압축하였다. 이 예비 시인들의 대표작을 뽑아, 「혜령언니의 재봉틀」, 「도배사」,「탁설」, 「겨울 북성포구」를 최종 후보작으로 상 위에 올렸다.

 「겨울 북성포구」는 바다에 면한 도시의 경관을 차분하게 묘사하고 있다. 세상 너머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포구에 갇힌 삶의 비애를 쓸쓸히 곱씹으며, 산다는 사실 자체의 지난함을 일깨운다. 다만 자연스럽게 쓰인 비유와 표현들이 매우 익숙해서 진한 느낌을 주기에 부족하다. 「혜령언니의 재봉틀」그리고 함께 투고된「봄날」은 재봉 공장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튀는 움직임을 스냅사진처럼 찍어 늘어놓음으로써 삶의 생동을 가쁘게 전달한다. 거기에서 풍기는 땀내는 썩 간지러운 에로티시즘이다. 그 신명이 리듬을 타고 있다. 거기에 삶에 대한 고독한 반성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일 터, 그럼에도 그게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느낌은 가득한데 질문이 없다. 이 기분 뭐지? 하는. 「도배사」는 벽 도배하는 사람의 작업을 촘촘히 묘사하고 있다. 시간을 미세히 쪼개 그 하나하나의 동작을 부조한다. 거기에서 삶의 매순간의 긴장이 선명히 느껴진다. 그러면서 사람의 노동이 광활한 자연의 풍경속으로 투사되었다가 다시 사람에게로 반사된다. 그 묘사가 아주 자연스럽지는 않다. 벽지에서 자연을 보는 건 사람의 환상에 근거한다. 그 환상은 물론 환상일 뿐이다. 

「탁설」은 절에서 봉사하는 옥분엄마의 수행을 보여주고 있다. 아들을 잃은 슬픈 사연이 있고, 그 때문에 절에 들어와 ‘묵언수행’, ‘쇄골공양’을 하는 중이다. 화자(話者)가 따로 있다는 게 이 시의 멋의 출발점이다. 화자는 옥분엄마도 보고 절에 몰려온 중생들도 본다. 중생들의 소란스러움에 깃든 자잘한 욕망들과 그 표현들은 한 때 중생의 일부였던 옥분엄마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렇다고 죽은 아들이 돌아오진 않는다. 화자는 옥분엄마의 마음 다잡는 안간힘을 본다. 그 안간힘을 각성으로 돌리는 게 ‘탁설’이다. ‘탁설(鐸舌)’은 풍경(風磬)안의 방울을 가리킨다고 한다. 각성의 혀끝이다. 묘사와 비유와 서술과 상징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심사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