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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어느 시인이 “그 마을의 주소는 햇빛 속이다”라고 썼던 것을 떠올리며, 나는 ‘신춘문예의 주소는 문화제도 속이다’라고 쓴다. 그것은 문화제도 속에서 살아 숨쉰다. 그것은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그러하다. 긍정적이라는 것은 문화제도의 중심으로의 구심적 운동을 그것이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에서 쓰인 것이다. 외재적으로 신춘문예는, 문단이라는 공식 기구에 편입되려는 욕망을 겹으로 두르고 움직인다. 내재적으로 그것은, 문화제도가 문화의 본질을 미리 전제하고 그것에 맞추어지기를 요구하듯이, 문학적 본질을 상정한다. 작품 자체이건, 심사평이건, 당선 소감이건, 신춘문예를 둘러싼 언술행위들은 문학적 본질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고 주장하는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심사평은 작품에 씌어진 언어들의 의미를 묻기보다..
예심에서 올라 온 11편의 소설 대부분은 만화적 상상력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만화는 현실의 축약과 변용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무미건조한 일상을 건너뛰도록 하는 힘이 있지만, 그러나 그 대가로 현실로부터의 검증을 회피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김엄지의 「돼지우리」, 이정옥의 「치코의 숲」, 김미선의 「미로」가 마지막 후보작으로 거론되었다. 「돼지우리」는 현대인의 욕망을 돼지의 탐식에 빗대어 풍자하는 힘이 돋보였다. 그러나 작위적 설정이 진실에 다가가는 걸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치코의 숲」은 유한자인 인간 삶의 근본적인 이원성, 즉 창조가 파괴가 되고 선과 악이 등을 맞대고 있는 상황을 환상적 형상들을 통해 추구한 소설이다. 데미안적 주제와 수미일관한 구성이 돋보였다. 그러나 동원된 형상..
예심을 거쳐 올라 온 열 편의 소설은 대체로 구성이 안정되었고 제가끔 독특한 문체를 보여주었다. 한국 소설의 기초가 매우 탄탄하다는 사실의 증거로 여겨도 좋으리라. 박하의 「오션 파라다이스」, 오윤서의 「그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동욱의 「여우의 빛」이 마지막까지 논의되었다. 「오션 파라다이스」는 ‘바다 이야기’라는 투기성 오락에 중독된 사람의 시시각각으로 돌변하는 정신적 상황을 생활상의 궁핍에 비추어 그 절박함과 그 비루함을 동시에 임계점까지 끌고 간 작품이다. 「그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는 배가 끊긴 섬에 남겨진 여인과 두 등대지기 사이에 조성된 관계의 미묘한 심리적 긴장과 그것을 미리 판단해 버린 여인의 불행한 파국을 재치있게 연결시킴으로써 생각하는 동물로서의 인간의 어리석음을 일깨운..
이번에도 평론의 기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이론에 대한 지식을 과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설익은 개념들이 횡행하면서 작품을 파괴하거나 작품과 겉도는 독무를 추는 글이 적지 않았다. 이론이 문학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니, 배울수록 좋다. 그러나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니 작품 분석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은 네 편이다. 김수영의 시를 다룬 정경은의 「생활의 뒤란, 시」는 엉뚱한 상상력으로 김수영의 시를 장식해가면서 시의 변주를 다룬 재미있는 글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김수영 시의 이해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장욱과 김행숙의 시를 다룬 송승환의 「청동 방패를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은 동일성의 부정이라는 기본적..
강정구씨의 「세상을 떠도는 목어들」은 차창룡의 시 세계를 풍자의 범주 안에 넣고 차창룡만의 특별한 풍자의 양식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 글이다. 텍스트의 고유한 경험을 최대한 되살리는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평론의 길이라면 강정구씨는 평론의 ABC를 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문학의 고유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경험이지 주제의 그것이 아니다. 주제를 가지고 경험의 세계를 휘젓다 보니 글이 겅중거리고 성길 수밖에 없다. 김용하씨의 「비윤리적 세계의 재현과 윤리적 풍경의 기원」은 시적 직관을 통해 순간적으로 구현되는 창조적 공간으로서 시를 이해하고 그 창조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화의 경험을 읽겠다는 의욕이 두드러진 글이다. 그 의욕 속에서 씨는 이성복의 시가 현실에 대한 부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