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프랑스의 여성시 (32)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무제 인간의 삶에는 보상이 없다. 사는 것보다 더 하거나 덜 한 대가란 없다. 식물이든, 광물이든, 동물이든 빛나고 울고, 울부짖고 흐느끼는 그 모든 것. 코끼리의 찢는 소리 암소의 음메 소리 당나귀의 칭얼 소리, 뱀의 쉬익식 쉬익식. 울어봤자 소용없어, 그 소리 요란해도 한 사람을 죽음에서 꺼내지 못하네. 죽음은 의기양양. 웃음짓네. 오만히 흡족하여 이리 말하네. « 죽은 자들의 등 뼈 위에 너희의 쟁기를 얹거라. » L'existence humaine est sans prix sans plus ni moins de prix que tout ce qui existe végétal, minéral, animal tout ce qui brille, hurle, brame, gémi barrissement ..
첫 잎사귀 너희들 내게 내미누나, 나무의 푸른 작은 손들을. 길가 나무의 푸른 작은 손들을. 낡은 벽돌담들은 군데군데 허물어져서 고가들의 퇴락을 드러내고 있는데. 너희들은 내게 내미는구나. 생울타리의 새싹들을. 작고 푸른 손가락들을. 어리고, 반짝이며, 맹렬히 생을 탐하는 조개모양 접힌 손가락들을. 낡은 벽돌담 너머로 너희들은 우리에게 몸을 내미는구나. 늙은 벽돌담은 말하네 : « 광풍을 조심하거라, 작렬하는 햇볕을, 번득이는 밤들을 조심하거라. 염소를, 송충이를 조심하거라 산다는 걸 조심하거라, 오 작은 손가락들아 ! » 푸른 작은 손가락들아, 발톱을 가졌지, 다정하지만 퉁명스러울 줄도 알지. 너희들은 오늘 아침 왜 늙은 벽돌담이 카상드르 [2]의 목소리를 내는지 잘 알고 있지. 보송송한 비단을 두른 ..
남풍을 위한 노래 오 남풍이여, 어서 와 눈을 마셔줘오. 우리는 얼음과 바람으로 배가 불러요. 다감한 민들레가 흙에서 뽑아내요. 황금빛으로 아롱이는 아주 조그만 햇살 하나를. 오 남풍이여, 어서 와 눈을 마셔줘오. 우리는 추위와 비로 배가 불러요. 데이지 한 송이 있어 흙에서 뽑아내요. 피를 촐촐 흘리는 아주 조그만 햇살 하나를 오 남풍이여, ‘사랑’ 신이 그대를 보호해 주시길 기원해요. 우리는 모두 배고프고 행복에 굶주렸다오. 새싹 눈은 모두가 겁먹은 채로 엿보고 있다오. 그대가 쪽빛의 숨을 들이켜 눈을 마시기를 CHANT POUR LE VENT DU SUD O brise du Sud, viens boire la neige, nous sommes repus de gel et de vent, un dou..
성모께 드리는 기도 지고한 사랑이여, 제 말을 들어주소서. 제가 당신을 어디에서 맞이했는지 알지 못하고 그대의 처소가 어느 태양인지 알지 못하고 어느 옛날에 당신의 시계로 어느 때에 제가 당신을 사랑하였는지 모를 수도 있겠지만요. 제 기억을 꿰뚫고 계신 드높은 사랑이여 . 제 삶을 만들었던 화로 없는 불길이여, 어느 운명으로 저의 생애를 가로지르시고 어느 꿈결에 당신의 영광을 마주 보았는지 오 저의 안식처여… 언젠가 제가 길을 잃어버리고 무한 심연 속에서 갈라지는 날이 올지라도 무한히 제가 부숴져 저를 입혀준 오늘이 저를 배반하는 날이 올지라도 우주에 수천의 조각으로 몸이 찢겨 나가도 수많은 순간들에도 다시 합치지 못한다 해도 하늘에 뿌려진 한 줌 재에서 잡티 털어낸 허무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어느 낯선 ..
이제 많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리 많은 사람들이 이제 빛이 파닥이는 걸 보지 못하리. 봄날 아침의 미묘한 광채도. 다정한 햇살이 앵초 꽃잎을 살짝 열어보지만, 헛되리. 나는 스무 살도 안 돼 죽은 젊은 영혼들을 생각하네. 운명이 겨우 삶의 맛을 본 저들을 어둠 속에 눕히네. 늙은이들과 여인들은 바라보리. 저 곱은 손들 안에서 사그러드는 불꽃을. 신성한 불길들이 꺼져가는 것도. 하지만 이들은 다시 살아나누나. 그러나 저 젊은이들은 더 이상 이 신비를 알아보지 못하리. 저 옛날에 기쁜 날에 그들을 사로잡았던 그것을. 태어나는 새싹들에 빛 줄기 하나만 놓일 때. 어린 나무에 꽃이 필 때거나, 푸른 하늘이 펼쳐질 때의 그 홀림을. 저들은 더 이상 감미로운 열락을 느끼지 못하리. 저 옛날 오직 아름다움만이 숨결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