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김현 (16)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들어가보면 언어도 세상도 없고, 거북함, 불편함, 편안함, 즐거움의 감각적 깊이만이 있다." (3:88) 1 이 글을 쓰기 위해, 「김현 문학 전집의 편집 체제」(김현 문학 전집 제16권, 『자료집』, 문학과지성사, 1993)를 다시 읽다가, 나는 그 글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선생님의 이름을 남발했음을 발견하고 잠시 놀란다. 가령, “그가 생전에 책으로 묶지 않았던 글들의 수집은 그가 남겨놓은 스크랩북 네 권을 토대로 삼았다.”고 써도 될 문장을 나는 “김현이 생전에 책으로 묶지 않았던 글들의 수집은 김현이 남겨놓은 스크랩북 네 권을 토대로 삼았다.”(3:43)고 씀으로써 꼬박꼬박 그이의 이름을 명시하고 있었다. 이런 예를 포함하여, 도처에서 ‘김현’은 마치 ‘봉무제’(윤흥길)씨의 ‘무제’처럼 박혀..
그 책(김현, 『한국문학의 위상』, 문학과지성사, 1977)을 나는 두 권 가지고 있다. 한 권은 서점에서 사서 읽고 감동했고 다른 한 권은 저자가 주어서 감격했다. 그 책이 감동의 샘이 되었을 때 나는 저자에게 홀린 문학도였다. 어떤 감동도 무조건 오지는 않는다. 감동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그 의지는 감동의 기미라고 말할 수 있는 기이한 감정의 안개 속에서 태어난다. 감동의 기미, 그러니까, 조산된 감동의 분비물들은 그 책 이전의 저자의 책들, 『상상력과 인간』, 『사회와 윤리』, 그리고 김윤식 선생과 공저한 『한국문학사』 등을 읽으면서 스며 나왔을 것이다. 그 책들은 문학과 삶의 관계에 대한 나의 경직된 고민을 교정해준 책들이었다. 저 유명한 ‘순수’와 ‘참여’의 싸움이 그것이었는데, 경직된 관점..
가고 온다. 무엇이 가고 오느냐 하면, 김현이 가고 온다는 것이다. 김현은 1990년 6월 27일 새벽에 음침하게 매복해 있던 죽음과의 줄다리기에서 손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꼬박 3년 만인 엊그제 27일 김현 문학 전집 전 16권이 완간되었다. 전집 완간과 더불어 김현은 마침내 다시 왔다. 물론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오지는 않았다. 김현 전집은 1991년 6월부터 6개월 간격으로 모두 5차례에 걸쳐 출판되었다. 김현은 그가 죽은 날로부터 지속적으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파도는 3년 동안 죽음과 삶 사이의 방파제를 두드린 끝에 드디어 범람하였다. 그 해일, 그것은 지금․이곳의 세상을 소리없이 넘실댄다. 귀가 그것을 부인해도 몸은 그 은은한 파동의 떨림을 들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진동에 당황하..
김현 선생은 한글로 사유하고 한글로 글을 쓴 첫 세대의 비평가였다. 그 한글은 세종의 훈민정음도, 『독닙신문』의 ᄒᆞᆫ글도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인의 생활에 뿌리내린 한글이었다. 그러나 근대적 민족국가로서의 한국이 불구였듯이 우리의 한글도 아직 대가 약했고, 외국어의 범람 속에서 위태로웠다. 김현 선생은 한글로 사유하고 한글로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한글로 사유하고 한글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실천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민족적이지 못한 언어로 ‘민족’의 문학을 외쳤을 때, 그이는 민족문학의 실체를 글로 보여주었다. 선생이 하신 크고도 다채로웠던 모든 작업들은 이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다. 김현 선생은 문학평론가였고, 문학사가였으며, 문학 연구가였다. 평론가로서의 그이에게서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해..
만일 ‘아끼는 책’이 “귀중히 여기어 함부로 다루거나 쓰지 않”는 책을 뜻하는 것이라면, 내게 그런 책은 없다. 예전에 그런 책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미 누군가가 집어 갔거나 아니면 내가 팔아먹었을 것이다. 그건 책이 아니라 골동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끼는 책이 사전적인 그런 뜻으로가 아니라 애독하는 책이라는 뜻으로 쓰일 수도 있다면, 그런 책은 여러 권 있다고 할 수 있다. 김현 선생의 『한국문학의 위상』,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 롤랑 바르트 전집, 라깡의 『강좌』 등등은 나에게 아까운 정신적 자양분을 아낌없이 베풀어주는 책들이다. 그 중에서도 김윤식․김현 공저인 『한국문학사』(민음사, 1973)는 문학 수업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되풀이해 읽으면서 무언가를 그로부터 훔치는 책이다. 『한국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