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오늘날 ‘개인’의 완성이 가리키는 지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오늘날 ‘개인’의 완성이 가리키는 지평

비평쟁이 괴리 2023. 11. 23. 21:54

※ 아래는 2023년 대산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이다. 오늘 시상식이 열렸길래 블로그에 올린다.

1차 독회에서는, 예심에서 올라 온 10권의 시집을 검토하였고 2차 독회에서 4권의 후보작을 선별하였다. 김기택의 『낫이라는 칼』, 손택수의 『어떤 슬픔은 함께 할 수 없다』, 황유원의 『초자연적 3D 프린팅』, 황인찬의 『이걸 내 마음이라고 치자』(가나다 순)가 저울 위로 올라갈 대상이 되었다. 최종 심사에선 우선 두 시집을 추린 후에 두 번째 투표에서 수상작을 건지기로 하였다. 
심사위원회는 4권의 시집이 모두 수상을 하기에 합당하다는 점에 동의하였다. 네 시집은 저마다 한국 시의 특징적 부면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김기택씨는 언어 세공의 극점을 향하고 있으며, 손택수씨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지치고 있고, 황유원씨는 개인의 존재론을 문화인류학적 차원으로 확장시키고, 황인찬씨는 21세기 한국에 사는 개인들의 매순간의 형상들을 프레스코로 채색한다. 
이 시집들에 대한 일독에서 모두 ‘개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어휘가 21세기의 가장 큰 화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문제는 이 개인의 경계를 여하히 그 너머의 지평과 연계시켜 우주와 생명의 진화에 가담할 여부가 될 것이다.
1차 투표를 통해 『초자연적 3D 프린팅』과 『낫이라는 칼』로 압축되었다. 두 시집은 오늘날 한국시의 양 극단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초자연적 3D 프린팅』에 실린 시편들은 철저한 독백적 사유로 전개된다. 그러나 그 고립된 주체는 역사, 사회, 문화의 창들 앞을 어슬렁거리며, 창 너머를 그린다. 그러면서 사유자와 풍경 사이의 존재 교환을 모색한다. 제목에서 쓰인 “3D 프린팅”이 가리키는 바이다. 이로써 개인의 문화인류학적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반면 『낫이라는 칼』의 화자는 독립된 개체이다. 그는 자신의 독립에 자주와 자유의 성질을 부여하려고 애쓰며, 그 노력이 성공할수록 그의 존재는 완벽해진다. 그런 완벽성에 대한 추구를 통해서 그는 현실의 부박함, 폭력성, 황폐함에 맞선다. 그의 바깥은 대결의 상대이다. 그리고 그의 싸우는 힘은 상대의 악마성에 대한 비난이나 그것의 결손 상태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완벽하게 벼리는 과정 속에서 축적된다. 김기택의 시들은 이를 위해 미적 완성의 최고도를 향해 솟아오른다.
심사위원회는 김기택의 작업이 오늘의 현실에 맞서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지적 생명의 노력을 진보시키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우리는 최종심급처럼 선전되는 ‘개인성’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으며, 문학의 행보도 그 고민을 등에 이고 나아간다고 간주해야 할 것이다. 김기택의 절차탁마는 그 고민이 낳은 가장 아름다운 매화라고 할 것이다. 수상을 축하하며 후보작에 오른 시인들에게도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