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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이 글 역시 앞의 글과 마찬가지로 김혜순 시인의 『날개환상통』(문학과지성사, 2019)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The National Book Critics Circle·NBCC) '시부문'에서 수상한 걸 계기로 올린다. 이 글 또한 필자의 『'한국적 서정'이라는 환(幻)을 좇아서 - 내가 사랑한 시인들 세 번째』(문학과지성사, 2020)에 수록되었다. ‘나무’는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서 가장 뿌리 깊은 이미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한 사전에 의하면 나무는 “가장 풍요하고 가장 널리 퍼진 상징재 중의 하나[1]”이다. 사전의 집필자는 이어서, 엘리아데Mircea Eliade가 ‘성스러운 것’과 만나려는 인류의 심성은 그것이 지상에 자리잡을 수 있는 중심의 자리..
※ 김혜순 시인의 『날개환상통』(문학과지성사, 2019)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The National Book Critics Circle·NBCC) '시부문'에서 수상했다. 크게 축하하고 기뻐할 일이다. 순수한 시적 성과로 세계시인의 반열에 그는 올랐다. 그의 경사가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의 궤도 안에 진입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아래 글은 김혜순의 시가 가진 변별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올려 본다. 이 글은 필자의 『'한국적 서정'이라는 환(幻)을 좇아서 - 내가 사랑한 시인들 세 번째』(문학과지성사, 2020)에 수록된 글이다. 김혜순의 시는, 인종․장애와 더불어 오늘날 가장 핵심적인 문제의 하나를 구성하고 있는 여성성의 첨예한 측면들을 농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가장 흔하고 쉬운 방..
※ 아래 글은, 이만형과 함께 번역한 장-뤽 낭시의 『나를 만지지 마라 -몸의 들림에 관한 에세이』, 이만형·정과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Jean-Luc Nancy, Noli me tangere - Essai sur la levée du corps, Paris: Bayard, 2003)에서 역자 해설로 씌어진 것이다. 최근 이 해설에서 약간의 오류를 수정해서 재작성하였고, 또한 이 글이 오늘 한국의 사회정치적 상황에 유익한 조언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 블로그에 올린다. 이 책은 예수의 부활의 장면에 관한 성찰의 글이다. 『요한복음』을 예로 간단히 정리하면 부활의 첫 장면(제20장 1~18절)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나서 안식 후 첫날 예수의 무덤이 빈 것을 알..
※ 아래 글은, 프랑스의 시인이자 문학비평가인 클로드 무샤르Claude Mouchrd의 한국문학에 관한 평론집, 『다른 생의 피부: 오를레앙, 파리, 서울 그리고 시』(문학과지성사, 2023)에 '추천의 글'로 씌어진 것이다. 책이 나왔길래, 이 벽안 학자의 한국 문학에 대한 애정과 참신한 시각을 소개하기 위해, 블로그에 올린다.[1] 1. 세계문학의 지형 안에서의 한국문학의 미미함 클로드 무샤르 선생은 한국 문학을 해외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신 분이다. 이 말이 품은 함의는 크다. 그것은 아주 긴 세월 동안 한국 문학이 세계문학의 변방에서 ‘확철붕어’ 꼴로 쪼그리고 있었다는 사정과 연관되어 있다. 지리상으로 한국은 ‘극동’에 속해 있다. 세계 지식의 지리정치학을 주도하는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아주 멀리..
어제(2023.02.02.) 연세대학교에서 무슨 행사(GEEF)가 있어서, 윤동주에 대해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같은 세션에 김형석 선생도 연사로 오셨다. 발표가 시작되기 전에 잠시 한담을 나눌 시간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김형석 선생은 윤동주 시인보다 세 살 연하이지만 평양 숭실중학교 동기동창이시다. 당시(1936년 3월)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에 불응하다가 학교가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그해에 학교는 유지되었다. 다만 윤동주와 김형석 두 분은 학교를 그만 두었다. 둘은 서로에게 물었다고 한다. “어떻게 할 건가?” 윤동주는 “나는 만주로 돌아가면 된다. 그만 두겠다.” 평양 사람인 김형석도 그만 두었다. 김형석 선생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학교를 자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