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문학일반 (7)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성귀수가 발레리의 "Le vent se lève!"를 "바람이 일어난다!"로 번역한 것(폴 발레리, 『바람이 일어난다! 살아야겠다!』, 성귀수 옮김, 아티초크 빈티지, 2016)은 의표를 찌르는 참신한 생각의 소산이다. 발레리의 이 시에 도전한 지금까지의 번역들은 모두 다음 문장 "Il faut tenter de vivre!"에 고심해 왔다. "Le vent se lève!"를 거의 자동적으로 "바람이 분다!"로 읽은 반면, 후자의 문장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는 한국어 문장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tenter de"가 문제였다. "Il faut vivre!"라고 했다면, 간단히 "살아야한다!"로 번역하면 된다. 그러나 영어로 "try to"와 비슷한 뜻의 "tenter de"가 앞에 끼어들어감..
※ 아래 글은 2015년 5월 25-26일 사이에 있었던 ‘제9회 한중작가회의’(중국 성도 파금문학관)에서 발제 형식으로 발표된 글이다. 문학시장의 변화와 작가의 정체성 20세기 후반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학의 장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민족 단위(혹은 언어공동체 단위)로 운행되던 문학이 세계문학의 장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세계화 바람과 더불어서 진행된 이 변화는 그러나 세계화의 일반적 흐름에 그대로 부응한 움직임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우선 세계화의 진행과정 중에서 세계화의 불가피성이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게 되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세계화 과정 초기에 격렬하게 일어났던 반-세계화 운동들은 거의 모두가 대안-세계화 운동으로 변모하였다. 이는 현재 정치·경제·문화 ..
※ 아래 글은 지난 5월9일 중국 태창(太倉)시에서 열린 '한중시인회의'에서 발제 형식으로 발표한 글이다. 이 회의의 주제는 '현대시와 동아시아의 문화전통'이었다. 우리는 ‘전통’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의 삶이 과거의 연장인 한, 당연히 전통적인 것들이 자연스럽게 오늘까지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그렇다. 전통은 끈질기고 지속적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놓여 있다. 왜냐하면 ‘모더니티’라고 명명되는 서양적 문물의 세계적 확산 이래 서양 바깥의 문화 역시 서양적인 방식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언어문화’ 역시 서양의 문학을 통해 새롭게 개편되어 그 형식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오늘날 ‘시’라 부르는 것들은 과거의 시들과..
문학과지성사에서 새롭게 간행하고 있는 이청준 전집은 한국의 출판사에서 중요한 단절을 긋는 출판물이다. 바로 전집에 ‘주석notes’과 ‘변이variantes’가 포함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주석은 전집에 수록된 모든 작품들에 대해 의미있는 설명을 단 것을 가리키며, ‘변이’는 작품의 최초 출간 이후 작가가 손을 대어 일어난 작품의 변형의 궤적을 가리킨다. 이렇게 ‘텍스트 원전 비평’의 결과를 담은 전집은 한국에서 최초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에 속한다. 이러한 형식을 ‘총서’의 수준에서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는 출판물은 프랑스 갈리마르(Gallimard)사의 ‘플레이아드 총서Bibliothèque de la Pléiade’로서, 문학사에 기억될만한 작가들의 전집 혹은 선집으로서 발행되는 이 총서..
철학자는 시를 꿈꾸고 시인은 진리를 소망한다. 플라톤이 자신의 공화국에서 시인을 추방하려 했다는 것은 오래된 고정관념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관념은 과장된 것이다. 그는 시인을 추방하려하기보다 시인에게 제한을 두려고 했다. 흔히 거론되는 『공화국』, ‘제 10장’(플라톤의 『공화국』의 인용은, OEuvres Complètes, Tome VI~VIII, Textes établis et traduits par Émile Chambry, SOCIETE D'EDITION ≪LES BELLES LETTRES≫, 1974~1989에 근거한다.)의 첫 머리에서 그는 “자신이 세우려는 공화국이 최고의 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단 그것을 위해서는 “시를 규제할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