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시의 숲 속으로 (15)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교육대학원생들과 미당의 「추천사(鞦韆詞)」를 읽었다. 먼저 대학원생들의 발표가 있었는데, 현재의 교과서 및 참고 도서들의 해석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추천사」는 『서정주시선』(1956)에 수록되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다룬 시들에 비해 상당히 늦게 발표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이 시를 읽어 보기로 한다1). 학생들―실제 직업은 대부분이 선생님들인―의 열정어린 독해가 준 감동을 좀 더 느껴보기 위해서다.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밀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 나무와 벼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데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조 내어밀 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
이제 「추일서정(秋日抒情)」을 읽어 보자. 落葉은 폴- 란드 亡命政府의 紙幣砲火에 이즈러진도룬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曰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시의 急行車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筋骨 사이로 工場의 지붕은 횐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꾸부러진 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세로팡紙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一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風景의 帳幕 저쪽에 고독한 半圓을 긋고 잠기어 간다1) 지난 호들에서 1930년대에 행동과 관조의 분화가 일어났고 그 사이에서 순수한 미의식이 솟아났다고 적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례들과 그에 관련된 작가들을 몇..
감상성과 이미지- 김광균의 「설야」, 기타 중등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며, 김광균의 대표작으로 흔히 거론되는「추일서정(秋日抒情)」은 『인문평론』10호(1940.7)에 발표되었고, 두 번째 시집, 『기항지』(1947)에 실렸다. 첫 시집, 『와사등』(1939) 이후에 씌어진 시이다. 이 두 시집은 거의 비슷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나, 두 번째 시집에서 특유의 감상주의가 많이 가셨다. 감상주의란 무엇인가? 로베르 사전은 감상성sentimentalité을 “지나치게 감상적인 태도”라 정의하고 감상주의를 “감수성을 억지스럽게 드러내는 태도Affectation de sensibilité”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동어반복적인 정의가 암시하듯, 감상주의는 외부적 상관물을 찾지 못할 때 감성이 홀로 격화되는 증상..
지난 호들을 통해 1930년대에 행동과 관조의 분화가 일어났다는 얘기를 했다. 우리는 이 사건의 원인과 성격과 양태들을 동시에 이해해야 한다. 우선 이 사건의 근원에는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이 동시에 있다. 특수한 원인이란 한반도의 현상에만 작용하는 원인을 가리킨다. 그 특수한 근원을 ‘3.1운동의 좌절’, 즉 독립선언의 실패에서 보았다. 보편적 원인은 모든 일에 공통적으로 개재하는 것이다. 어떤 현상의 탄생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행동적 층위와 성찰적 층위, 좀 더 일반적인 용어로 바꾸어, 존재 층위와 의식 층위로 분화된다는 것이다1). 이 얘기를 하는 까닭은 특수한 원인이 자칫 이 분화를 부정적으로 인식케 할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오히려 이 분화는 성장의 표지이다. 이것은 부정적 상황을 극복..
「오감도 제1호」에서 보았듯이, 관조와 행동의 분리는 ‘한국적 서정시’에서만 진행된 게 아니다. 그것은 1930년대의 전반적인 흐름이었고,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잠시 유보하기로 하자. 우선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행동과 관조가 분리되었다는 것이 관조의 시가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상의 경우처럼 그 둘의 분리와 공존을 뚜렷이 자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가령 김광균이 처음 쓴 시로 알려져 있는 「오후의 구도」의 마지막 시구를 읽어 보자. 바람이 올 적마다 어두운 커-튼을 새어 오는 보이얀 햇빛에 가슴이 메어 여윈 두 손을 들어 창을 나리면 하이-헌 追憶의 벽 우엔 별빛이 하나 눈을 감으면 내 가슴엔 처량한 파도 소리뿐1) 에서 “어두운 커튼”은 “보이얀 햇빛”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