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프랑스의 여성시 (32)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사랑이란 – 연가 매일매일을 바람으로 지내는 것, 뭘 욕망하는지 뚜렷이 알지도 못한 채로. 동시에 웃고 우는 것, 왜 우는지, 왜 웃는지도 모르면서. 언제든지 떼쓸 수 있다는 걸 아침에는 두려워하고 저녁에는 소망하는 것. 그이가 환심을 구할 때는 무서워하고 그이가 윽박지를 때는 저게 연심이려니 하는 것. 제 고민을 보듬으면서도 지겨워하는 것. 온갖 얽매인 것들을 공포에 질리면서도 즐거워하는 것. 심각한 문제들을 가볍게 제끼면서 사소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위장했다가 솔직했다가 하는 것. 소심하고, 거만하고, 멍청하고, 빈정대고. 모든 걸 다 바치면서도 아직도 바칠 게 남았는지 떨면서 헤아리는 것. 남들이 고평하는 친구들을 의심하고 낮이나 밤이나 자신과 전쟁을 벌이는 것. 결국, 사랑받을 때는 사..
공포정치 속에서 딸과 헤어지고 만 엄마의 노래 내가 낳았으니, 내 새끼인 이 아름다운 장미나무. 기쁨은 너무나 짧았더라 ! 달아나야만 했어, 그리고 어쩌면 내가 살아있는 동안엔 영영 못 볼 수도 있어. 예쁜 장미나무, 태풍에게 넘겨줬네. 힘이 없었으니, 분노는 무장해제당했지. 광풍 아래 내 머리가 꺾이거나 또는 네 꽃들이 그리 되었구나. 내 기쁨, 내 자랑이었으며 내 근심, 내 행복이었으니.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못할 터. 너는 내 마음에 뿌리내렸으니. 비록 내가 악의 힘에 내몰려 나만을 구하는 데 정신 없었다고 네가 생각할지라도 나는 네 곁에서 피어난 장미만을 보았단다. 가시는 너에게서 멀찍히 떨어진 데에 있었지. 장미나무야, 네 이파리들을 소중히 건사해라. 늘 아름답고 늘 푸르르거라. 천둥이 물러..
불규칙 시절(詩節) 오 죽음이여 ! 내 삶을 없애버리네 내 나날의 끈을 잘라버리네. 지체없이 출몰해 내 악행의 흐름을 끝장내누나. 죽음이라, 죽음은, 아니 이 끔찍한 순간은, 허약한 영혼은 두려워하지만, 내게는 그저 감미로움. 죽음은 내 악덕을 끝장내는데, 사랑은 그보다 더 끔찍해, 항구적인 고통을 안기는구나. 나를 제물로 삼았던 그 역겨운 날 이후, 이 장소들은 오로지 우울한 사막들만을 내게 보여주네. 나는 나를 짓누른 불행과 싸우고 싶으나, 헛된 일. 이 광막한 우주에 내게 남은 건 하나도 없어. 밤의 장막은 쉼없이 나를 감싸고… 나를 부추기는 욕망들아 입을 다물라 : 하아 ! 티르시Tyrcis[1]가 나를 버릴 때, 여전히 희열이 일까 ? 아니야 : 그 순간에 마주치면, 경보도 없이 내 눈은 백주 ..
남자들에게 거짓 자유를 뻐기며, 그대들을 주인이라고 착각케 하는 ‘성별’(性別) 적어도 그럴 만한지는 알아봐야지. 당신들의 긍지를 증명해봐요. 그런 다음에야 우리가 만날 수 있잖아요. 그대가 합당한 자격을 보여줄 때, 그대를 즐겁게 해줄만큼 그대 자신을 초월할 때. 너무 솔직하게 말해 미안해용. 당신에겐 도발로 보이겠지만, 내 기질에 딱 맞는답니다. 독립적이면서도 변덕스럽지만요, 정말 좋아요 ! 내 펜은 내 마음에 복종한답니다. 논평은 당신 몫이지요. 그건 분명 아주 고상한 일이겠지요. 우리의 몫은 즐거움을 생산하는 것, 못난 것들을 증명해 잘난 것을 가치있게 만든답니다. 당신의 썩 심각한 논거에 대해 우리는 놀이로 화답하지요. 엇대고 빗대는 말로. 우리의 시시한 ‘아에로파고스[1]’는 그대의 영웅들에게..
나비와 애벌레 비천한 곤충아, 너는 뭐가 좋니 ? 아주 예쁜 나비가 애벌레에게 묻고 있었지요. 화단에서 팔락거리면서요. 네가 감히 상냥한 정원에 자리를 차지하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향을 맛보냐 ? 내가 보기에 너는 무모하기 짝이 없어 ! 백합과 장미에게 다가가도 된다고 누가 그러더니, 참 맘도 편하구나 ? 그런 특권은 나만 가지고 있는 거야… 애벌레는 매우 현명하게 대답하네요. 변태를 한 걸 가지고 왜 그렇게 오만을 떠니 ? 나 너 안다, 그리고 네 도도한 성질 참 웃긴다. 너도 옛날엔 나와 같았어. 한달 전만 해도 먼지구덩이 위에서 박박 기고 있었지. 내 곁에서, 이 장미나무 근처에서 말야. 다른 이들은 몰라도 너는 기억하겠지. 날이 지나면 너는 내게도 날개가 달리는 걸 보게 될 거야. 나는 가장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