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울림의 글/프랑스의 여성시 (32)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소네트 – 무제 나는 날개 달린 말이 바위를 차서 솟아나게 한 샘물을 결코 마신 적이 없어요.[1] 그런 이교도의 물엔 손을 적시기도 싫어요. 내 아픔을 달래기 위해 다른 음료를 찾는답니다. 거대한 갈증조차도 멈추게 할 수 있는 지고한 은총의 천상의 개울로부터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열렬히 바라오니, 거기서 내 가슴에서 세속의 오점을 씻고 싶습니다. 나는 영광스런 월계관을 쓰고 싶은 게 아닙니다. 도금양의 왕관이든 올리브 잎 왕관이든 마찬가지에요. 그것들은 가장 고결한 얼굴들을 위해 남겨두세요. 내 영혼엔 불안이 가득하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니 내가 어찌 오연(傲然)함의 표식들을 두르겠어요. 나의 주님도 가시관을 쓰시지 않았던가요 ? [1] 그리스 신화에서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 참조. 말발굽..
소네트 II 오 아름다운 갈색 눈, 오 외면하는 시선 오 뜨거운 숨결, 오 터져버린 눈물 오 컴컴한 밤, 헛되이 기다릴 뿐 오 빛나는 아침, 헛되이 돌아오네. 오 하소연은 슬프지만, 오, 욕망은 끈덕지네 오 시간은 허비되고, 오, 수고는 낭비되네 오 수천의 죽음이 수천의 덫에 걸렸네 오 내게는 더 가혹한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네. 오 웃어요, 오 이마야, 머리카락아, 팔아, 손아, 손가락들아. 오 루트는 울고, 비올라, 악궁, 그리고 목소리 : 한 여인을 달구는 엄청난 화염 ! 내 마음 그대로 가득하고 그토록 많은 불길 간직했는데, 그대의 그 많은 장소들을 내 마음 더듬더듬 했는데, 그대 위에선 어떤 섬광 날지 않는구나. ※ 플레이아드 판, 『프랑스 시선집 Anthologie de la poésie fra..
나의 토리개에게 - 카트린느 드 로슈(Catherine des Roches) 토리개 내 아끼는 보물, 나는 그대에게 약속하고 맹세하오. 그대를 영원히 사랑한다고, 결코 변함 없으리라고. 이랬다 저랬다 하고 그 마음 얼마 못가는 바깥의 재산보단, 집에서 그대가 이룬 명예를 사랑하오. 그대를 곁에 두고 있으면 나는 한결 안심이 되오. 잉크와 펜을 가지런히 준비하고 내 그 앞에 앉아, 나를 지키려 할 때, 그대는 어떤 모욕도 밀쳐내줄 수 있다오. 하지만 토리개, 내 친구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소중히 여기고 당신을 이토록 사랑하느라고 나는 이른바 교양있는 세계로부터 버림받았다오. 이따금 글을 쓰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내가 하는 일은 그대의 가치를 밝히는 것, 토리개 내 보물이여, 내 손 안에 있는 건,..
노래 II 그대는 보고 계시지요 ? 정숙한 사랑의 광채가 내 일하는 팔 아래에 날마다 불 밝히는 걸 당신은 내 사랑이어야 하는 거지요 ? 당신은 보고 계시지요 ? 내가 당신을 위해 기운을 다하고 당신을 갈망하며 몸이 가라앉으니 당신은 내 사랑이어야 하는 거지요 ? 당신은 보고 계시지요 ? 아름답지 못하게 당신과 다투는 일은 하지 않아요. 그러나 더 잘 되기 위해 당신을 보채긴 하지요. 당신은 내 사랑이어야 하는 거지요 ? 설혹 어떤 다른 사람의 사랑이 온다 하더라도 결코 당신에게 잘못하지 않겠어요. 당신을 울게 하지 않겠어요. 당신은 내 사랑이어야 하는 거지요 ? 당신은 보고 계시지요 ? 순간의 변덕없이 언제나 당신에게 한결같으니, 시간은 더욱 단단하게 해준답니다. 당신은 내 사랑이어야 하는 거지요 ? ..
나 죽을 병에 걸려 Je suis de tout dueil assaillie… - 크리스틴 드 피장 (Christine de Pizan, 1364?-143O?) 나 죽을 병에 걸렸네. 내 인생에 이처럼 힘든 때가 없었네. 내가 변함없이 사랑하는 그이가 장가 간다고 하네. 나 죽어가고 있는데, 기뻐 죽겠다고 하네. 아이고 ! 나와 결혼하겠다고 약속한 게 언제인데.. 제 마음 속엔 온통 나 뿐이라, 내 마음 속에도 저만 있어달라고. 그래놓곤 못된 길로 빠져, 나를 차버렸네. 내 고장을 버리고 떠나 다른 처자와 함께 살겠다고 가버렸으니 나하고는 전쟁이로구나 사랑을 잃고 내 가슴은 찢어졌으니 나 죽을 병에 걸렸네. 오늘 그는 나의 적 어제는 나와 함께 했으나, 영원히 가까이 있으리라 했으나 아 나의 신실한 연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