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심사평, 추천사 등 (77)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박정석씨의 시는 우리가 흔히 전통적인 서정시라고 부르는 것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다. 자기 세계를 갖기가 힘들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가 언어를 다루는 솜씨는 우물 깊은 곳에 감춰진 고운 진흙을,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는 방식으로, 고르는 정교함을 가지고 있다. 「우기(雨期)」에서 집 안에 갇힌 자의 권태를 끈적거리는 분비액을 흘리는 달팽이로 표상하고 그로부터 눈동자만을 취해 바깥의 장마에 대항케 하여, 안팎으로 벽에 부딪친 존재가 “우주의 바른 결”을 찾을 숨구멍을 하나 뚫는 과정의 섬세한 묘사는 씨가 시에 공들인 시간이 적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때로 시적인 것에 대한 전적인 헌신은 모든 삶을 그것을 부정하는 표지들로 채우게 될 수도 있다. 사실들이 놓일 자리를 족..
응모된 작품들을 읽으면서 지적 능력은 곧 표현 능력이라는 점을 새삼 느꼈다. 대부분의 작품들이 글에 대한 열정과 이야기에 대한 착상 그리고 형상화하는 솜씨 등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이는 의사들의 개가(凱歌)이자 동시에 문학의 위력이라고 할 만 했다. 의사들의 지적 능력이 수준급의 표현물들을 생산했다면, 다른 한편 문학의 매력이 그렇게 고급 두뇌들을 끌어당긴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순수한 열정이 문학적 차원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들이 충족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선 서술상의 리얼리티라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묘사의 정확성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사건 전개의 자연스러움을 또한 가리킨다. 사건이 움직이고 있음을 실감케 하면서도 단락들 사이에 엉뚱한 비약이나 답답한 반복이 없게끔 해..
취향의 무정부상태를 넘어서 이형기적인 것을 향하여 예심을 통한 ‘여과’의 절차들이 심한 거북함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그 절차의 합당성을 따지기 위해서라기보다 오늘날 취향의 무정부상태를 생각키우기 때문이다. 시를 시로 세워주는 것이 시의 ‘경향’은 아닐 것이다. 서정시든 미래시든 도시시든, 어떤 명명으로 시들을 가두건, 그 안에서도 좋은 시와 나쁜 시는 따로 갈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시의 잘 되고 못 됨을 단순히 시의 짜임새에서 구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한 때의 형식주의자들이 생각했듯이 좋은 시가 “잘 빚어진 항아리”와 혼동될 수는 없는 법이다. 왜냐하면 시의 성취 속에는 그 성취의 기준을 돌파하는 사업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파괴를 통한 부활의 작업이 없다면 인간이 어디에서 인간..
프로그램의 취지에 따라 학술적 성격의 책보다는 비평적 성격이 강한 책들을 골랐다. 비평적 성격이란 우선은 현장성을 뜻한다. 즉 오늘날 쓰이고 읽히는 문학작품들에 대한 동시대의 고급 독자의 독해와 반응이 ‘회생’의 요구에 직면한 한국문학에 약간의 약제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즈음의 국문학 연구가 문화연구와 상호소통하면서 연구 범위가 당대의 작품들에까지 넓혀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또 다른 기준이 마련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비평적 성격의 책이란 한국문학의 사실에 대한 냉랭하고 근엄한 단언의 책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사건에 대한 공감과 성찰과 대화의 책이라는 기준이다. 그 기준에 맞추다 보니까 냉랭하기보다는 지독히 고독했다고 해야 마땅한 몇몇 우수한 학술논문들이 빠지고 말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
나는 지금도 시가 생으로부터 솟아난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다. 시는 삶의 고뇌이고 삶의 박동이며 삶의 변형이라는 것 말이다. 그런 생각 때문에 나는 미리 시적 정황을 가정하는 시들로부터 큰 감흥을 얻지 못해 왔다. 시적 정황을 사전에 가정하는 시쓰기는 점점 도드라지고 있는 경향이다. 최근에는 시적 정황을 가정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시적 정황을 아예 처음부터 구축한 후에 언어를 그 주형 안에 배치하는 수준에까지 나아가고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그런 시는 우선 머리 속에 ‘그럴 듯하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형상 혹은 존재태들 그리고 배경이 실제적으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불가능성을 현실화하고자 하는 것은 시의 본래적 동경에 해당하는 것이라서 그것만으로 시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