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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조재룡의 『한 줌의 시』, 권성우의 『비평의 고독』, 장경렬의 『예지와 무지 사이』, 김형중의 『후르비네크의 혀』가 최종적으로 논의되었다. 네 권의 비평집이 모두 튼튼한 이론적 토대와 섬세한 비평적 감식안을 겸비하고 있었다. 특히 오늘날 한국 비평의 고질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외국이론의 무분별한 남용의 위험을 벗어나 있는 고급한 비평집들이었다. 그만큼 한 권을 선택하는 게 쉽지 않았다. 조재룡씨의 평론에서는 “고통과 상처의 말”을 품고 진리의 세계에 다가가고자 하는 비평가의 열정이 돋보였다. 다만 열정이 과도하여 세상의 모든 시를 끌어 안고자 하는 의지가 자칫 시적 가치들의 분별을 소홀히 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일었다. 권성우씨의 평론에서는 비평가의 자의식이 강렬하게 드러나고 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최종 심사대상작으로 선정된 평론집은, 김선학의 『문학의 빙하기』(까치), 김수이의 『쓸 수 있거나 쓸 수 없는』(창비), 오생근의 『위기와 희망』(문학과지성사), 이숭원의 『시 속으로』(서정시학), 한기욱의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창비), 황현산의 『잘 표현된 불행』(문예중앙)이었다. 한기욱의 책을 제외하면, 시 평론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평론집들이었다. 소설 평론집의 상대적인 침체는 곧바로 한국 소설의 파행에 대한 의혹을 낳았다. 즉 한국소설의 실체와 수준을 궁금해 하는 세계의 눈길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데, 정작 우리 소설은 문학 외적인 사건들을 통해 화제거리로 변질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시평론집의 활기는 문화의 변두리로 밀리며 독자로부터 외면..
예심을 통해 올라 온 7권의 시집 중에서 김상미의 『우리는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이윤학의 『짙은 백야』, 정숙자의 『액체 계단 살아남은 육체들』, 천양희의 『새벽에 생각하다』(가나다順)를 특별히 주목하였다. 이 시집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해당 시인들이 그 동안 구축한 시세계를 연장하면서도 타성에 빠지지 않고 더 큰 활기를 시에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시인들이 시에 관한 한 아직 ‘많이 배고프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허기가 그들로 하여금 새록새록 새로운 시를 쓰게 한다. 한국의 중년시인들이여, 축복이 있으라! 『액체 계단 살아남은 육체들』에는 시에 대한 의지가 용암처럼 분출하고 있다. 하지만 그냥 ‘시쓰고 싶다’고 외치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시를 쓰기 위한 조건과 재료와 방법과 태도의..
고시된 선정 기준들을 참조하면서, 특히 다음 세 가지가 핵심적인 기준이 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첫째, 청소년에 적합한 도서라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 청소년의 삶을 반영하고 청소년의 정서와 인지 능력과 상응하면서 그들의 영혼에 자극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청소년 책을 아동물과 혼동한 원고 혹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인 원고가 눈에 띠었다. 둘째, 이 선정의 목표가 “청소년 저작 발굴 및 출판지원”인 만큼 신인의 원고를 특별히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책을 내고 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 원고에 국가기관이 지원을 해야 할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셋째, 문학성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것. ‘소설’과 ‘수필’인 한, 단순한 사실 기록을 넘어 진실을 환기할 수 있는 언어 운용의 솜씨..
심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현대시』에서 매달 선정하는 ‘현대시작품상 이 달의 추천작’에서 소개되었던 시인 한 분이 그 사실에 대해 남우세스럽다며 언짢은 표정을 지으셨던 게 기억이 났다. 아마도 등단한 지 30년이 가까워 오는 사람이 '짬밥수가 적은' 시인들 틈에 끼이는 것이 못내 불편했던 것 같다. 평소에 젊은 시인들과 잘 어울리는 분임을 감안하면 『현대시』의 소개가 '상'의 후보작을 공시하는 소개였다는 것이 그의 결벽증을 촉발한 것이리라. 잠시 궁리하다가 나는 나의 짐작이 그의 진의라고 판단하고 그 의사를 존중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으며(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염결한 태도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현대시 작품상'에 그런 '제대규정'은 없는 걸로 알고 있지만), 그걸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