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2005년 '문학회생프로그램' 2차분기 평론 부문 선정 이유서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2005년 '문학회생프로그램' 2차분기 평론 부문 선정 이유서

비평쟁이 괴리 2022. 12. 10. 18:13

프로그램의 취지에 따라 학술적 성격의 책보다는 비평적 성격이 강한 책들을 골랐다. 비평적 성격이란 우선은 현장성을 뜻한다. 즉 오늘날 쓰이고 읽히는 문학작품들에 대한 동시대의 고급 독자의 독해와 반응이 회생의 요구에 직면한 한국문학에 약간의 약제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즈음의 국문학 연구가 문화연구와 상호소통하면서 연구 범위가 당대의 작품들에까지 넓혀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또 다른 기준이 마련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비평적 성격의 책이란 한국문학의 사실에 대한 냉랭하고 근엄한 단언의 책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사건에 대한 공감과 성찰과 대화의 책이라는 기준이다. 그 기준에 맞추다 보니까 냉랭하기보다는 지독히 고독했다고 해야 마땅한 몇몇 우수한 학술논문들이 빠지고 말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선정이유>

 

선정작: 이윤옥, 비상학, 부활하는 새, 다시 태어나는 말 이청준 소설 읽기, 문이당

 

이윤옥의 비상학, 부활하는 새, 다시 태어나는 말는 열정의 기록이다. 그렇다는 것은 이 책이 하나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일생을 바칠 각오로 접근했고 또 그것을 실천하는 도중에 태어난 산물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그 문제의 문제는 이청준의 소설 세계이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평론과 논문과 감상문과 기사가 씌어지지 않았던가? 그러나 아니다. 저자에 의하면 이청준의 소설을 전면적으로 파악하겠다는 시도는 끊임없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을 왜 하는가? 라는 인간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하는 것은 동시에 삶은 살만한 것인가? 삶은 왜 사는가? 이기도 하다. 문학도 그 삶의 일부이며 동시에 삶으로부터 외화(外化)되어 그것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변이종이면서 그 성찰을 통해 삶의 변화를 매개하는 삶의 구성체이다. 가면의 꿈, 예언자, 병신과 머저리등의 초기작에서부터 작년에 발표된 신화를 삼킨 섬에 이르는 매우 많은 작품들을 가로지르면서 저자가 끝끝내 물어보는 것은 바로 문학이 삶을 어떻게 부활시키는가, 다시 말해 삶이 어떻게 그 자신을 스스로 비상케하는가, 이다.

 

선정작: 엄경희, 저녁과 아침 사이 가 있었다 엄경희의 행복한 시읽기, 새울

 

시읽기는 행복한 것인가? 제목은 그렇게 쓰고 있지만 정작 서문에서 저자는 시읽기는 잔인한 일이라고 적고 있다. 왜 잔인한가? 그곳에 개미 한 마리가 보여주는 적나라한 생의 노정이 있고 사랑을 되찾기 위해 매맞는여인이 있으며, “저녁과 밤사이 악마의 시간을 견디는 고통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시인들의 저 고통 속으로 깊숙이 동참하여 함께 겪고자 한다.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은 저자가 연민의 비평가이기 때문도 아니며 심지어 그 고통 속에 구원이 있다고 믿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저자는 저 고통과 상처의 시들에서 시인의 생애 혹은 시인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생애 전체가 압축된 광경을 보았기 때문이다. 문혜진, 강희안 같은 젊은 시인에서부터 박목월, 서정주 같은 돌아간 시인에 이르기까지, 이름을 얻었거나 얻지 못했거나에 개의치 않고 저자는 그가 읽은 모든 시인들에게서 바로 그 '전체'를 본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그리고 저자는 썼다. 행복한 시읽기라고. 그가 본 것이 언어화된 - 삶의 적나라한 물질성이라면, 그게 어떻게 고통을 행복으로 연금하는 마음 화덕의 불길을 지폈던 것일까? 궁금한 분은 당장 책을 펼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