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심사평, 추천사 등 (77)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송반달씨의 시에는 인생의 고달픔을 이겨내는 신명이 있다. 그 신명이 솟아나는 자리들이, 즉 신명의 샘들이 특이하다. 그는 ‘고난 따로 용기 따로’로 보지 않는다. 아니, 살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혹은 살기에, 힘겨운 자리가 곧 신나는 자리이다. 그 동시성의 자리는 그러나 막무가내로 그렇다고 강변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인식은 꽤 복잡한 논리적(좀더 정확하게 말해 논리-실행적) 과정을 담고 있다. 가령, “허리 아프게 거친 파도의 검은 잔등에서 내렸다, 싶었는데/더 조급해진 바람이었다”의 ‘바람’은 아득한 여정을 재촉하는 채찍같은 바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문득 “붕뜬 허공”에서 “휘청휘청 춤까지 추는” 수양버들을 보고, 그 수양버들을 춤추게 한 것이 ‘바람’임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수양버들이..
한국의 청소년 독서 환경은 기형적이다. 시장은 넓은데 수요는 없다. 당연히 공급도 빈약할 수밖에 없다. 저 옛날 가난했던 시절에도 잡지 『학원』이라든지, 『얄개전』 류의 명랑소설 등 청소년들만을 위한 도서들이 있었는데, 청소년들의 씀씀이가 풍족해진 오늘에는 아예 전무한 형편이다. 이 기현상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이 그들 나름의 독특한 성향과 문제와 꿈을 가지고 있는 독립된 세대로서 고려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입시와 주입식 교육의 노예가 되어 있는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은 정신적으로는 어린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고, 지식에 있어서는 성인을 능가해야만 하는 지나친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청소년은 청소년이 아니라 늙은 어린이거나 덜된 어른인 셈이다. 이런 환경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
텍스트를 꼼꼼히 읽어내기는 비평의 하나의 덕목이 아니다. 차라리 그것은 원초적 덕목에 속한다. 비평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든, 비평은 끊임없이 텍스트로 회귀하는 과정을 거쳐서만 그렇게 한다. 텍스트는 비평의 허파이다. 정혜경씨의 「거울 속 陰謀에 대한 명상」은 썩 튼튼한 허파를 가지고 있으며, 바로 그 점에서 비평의 숨을 자재로이 호흡할 줄 아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에게도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바깥으로부터 끌어온 개념들을 약간은 당혹스럽게 설명없이 쓰는 엉뚱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사회심리학적 지평 안에 묶인 ‘거울’, ‘무의식’, ‘자아분열’ 등이 그런 개념들인데, 그런데도, 이 난입한 개념들은 텍스트의 흐름 속에 어찌나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는지, 치밀하지만 단조로운 독해의 과정에 야..
임현정 씨를 추천한다. 본심에 오른 분들의 작품 중에 임현정 씨의 시가 특별히 눈에 띠었다. 임현정 씨는 일상의 경험들을 독특한 이미지로 치환하는 데 능숙한 솜씨를 가졌다. 치환은 물론 단순한 번역이 아니다. 그것은 변신의 체험이며, 그 ‘변신’으로서의 활동으로 일상의 경험과 날렵히 대결한다. 씨의 시에서는 일상의 경험이 날 것 그대로 살아 있다. 그러면서도 그것들은 이미지들로 빛난다. 가령, “벽화를 보았나요. 소의 뿔이 인상적이었죠. / 그녀의 바지가랑이가 펑 젖어 있다”는 동굴 견학을 한 사람들의 대화와 모습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구절은 사회심리학적 차원에서의 음험하고도 예리한 관찰 혹은 비판을 담고 있다. 또한 “승용차 지나간다. / 고양이, 도로 위에 프린팅되다” 같은 구절에..
투고량이 많기도 했지만 좋은 시들이 많았다. 덕분에 선자들은 무려 12편의 시를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저마다 고유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그만큼 어딘가 아쉬웠다. 「해우소」를 쓴 성성연은 삶의 의미를 서너 개의 추상적 개념과 은유로 날카롭게 포착해내는 솜씨를 가졌지만 생각의 층이 옅었다. 더 엉큼해져야 한다. 윤현은 「겨울창」등 투고된 시들이 두루 고르고 단정했다. 하지만 밑바닥 정조는 감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별리의 「철길 사이」도 마찬가지다. 최정식의 「나의 유배지」는 비유의 화려한 박물관이었으나, 대부분 상투적이고 과장이었다. 「간이역에서 너를 본다」와 「대장간의 합창」의 임익문은 언어를 구조화하는 솜씨가 뛰어났으나 흔히 보아 온 생각이고 비유였다. 언어를 위태로운 지점에까지 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