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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추억 그의 이미지는, 꿈과도 같이, 어디에나 내 운명을 따라다니네. 내가 청수(淸水)에 몸을 담그면 그도 따라 물 속에 들어오지. 나는 떨면서 저항하나 헛될 뿐, 그의 운동의 선득함이란. 그 이미지 언제나 타오르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뛰고 있네. 그의 매력을 호흡하려고 나 하늘을 바라보면은 하늘과 내 눈물 사이에 그 모습 내 눈 앞에서 팔락거리네 그 감미로움은 압도하네, 배신자의 변덕스러운 욕망이 내 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 투명한 물결처럼 빠져나간 일을. 내게 닥친 불행 사랑하는 이로부터 그리도 멀리 떨어져 혼자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 앙드레 세니에 내게 불행이 닥쳤다오 ! 나는 더 이상 그를 기쁘게 해줄 수 없어. 나는 더 이상 그의 눈에 비친 매력이 아니야. 내 목소리..
15세에 죽은 북치는 병정 바라[1]의 죽음에 대해 젊은 영웅, 네 나라의 희망이여, 의연히 태어나 영광에 싸였도다 그렇게 이루어지고 네 운명은 마감했다. 그리고 네 일몰이 네 여명을 뒤따랐단다. 어떤 분노가 치명적인 것이 되어 너에게 저의 살인무기를 치켜들었니 ? 저 살인자는 네가 아직 네 엄마의 뽀뽀를 받고 있다는 걸 못 보았다는 거니 ? 아이고, 네 눈은 영원히 감겼구나. 은총의 신, 기쁨의 신, 사랑의 신이여, 눈물을 쏟아주시오. 이 아이는 저의 봄날에 쓰러졌다오. 이 아이는 영광과 무기밖에 경험한 게 없어요. 그러나 부당한 미련들은 그만 둡시다. 그가 말하지 않았나요 ? “나는 조국을 위해 죽는 거지요 ?” 프랑스 청년의 마음을 위해서는 그걸로 충분해요. 그리고 그의 죽음이 그의 삶을 보상한 거..
※ 아래 글은 제54회 동인문학상 제 8회 독회에 대한 독후감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김은의 『사랑의 여름』(자음과 모음, 2023.07)은 교과서적인 단편들을 모아 놓고 있다. 간명한 갈등 구조를 통해 사건에 특색을 부여하면서 상징적 제재들의 적절한 활용에 의해 리얼리티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사건의 마디들이 차분한 논리적 단계를 밟고 있고, 배정된 시간의 비율이 고른 점으로, 이는 작가가 매우 오랫동안 소설쓰기를 연마해 왔음을 짐작케 한다. 1990년대 이래 한국소설이 갈수록 플롯이 느슨하게 풀려 온 경향을 안타깝게 여겨 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유붕이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하여 “불역낙호(不亦樂乎)”인 심정을 더해 한국소설에 ..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제 8회 독회의 결과물로서의 독후감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구병모의 『있을 법한 모든 것』(문학동네, 2023.07)은 코믹인가? 한숨인가? 실상 여기엔 진부하고 데데한 현실만이 있다. 미래 세계인데 인간이 상상하던 환상의 미래도 음울한 디스토피아도 아니라 그냥 재미없는 현재의 연장선상이다. 게다가 그 연장은 한이 없다. 현재의 진부함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게 작가의 메시지다. 문제는 이 낡음에 대한 화자의 반응이 고도로 민감하다는 점. 구병모적 글쓰기의 특징은 사물들에 대한 모든 순간 모든 지점에서의 서걱거리는 느낌이다. 화자는 그 옆에 놓인 것들, 그가 만나는 것들, 스쳐 지나는 것들 모두를 지나치게 느낀다..
유령의 인사 옛 탑의 꼭대기에 전사의 유령이 우뚝 서 있네요. 그가 침울하고도 예언자적인 목소리로 허약한 수부에게 인사를 하네요. “이보시오, 내가 한참 젊었을 때는, 팔뚝은 강하고, 마음은 불굴이었소. 축제와 영광과 관능의 도취를 차례차례로 맛보았지요. 내 인생의 절반은 전장에서 보냈지요. 나머지 반에서는 안식을 구하였다오. 그게 무엇이든, 나그네요, 그대 욕망을 채우시오. 노를 힘차게 저어 물결을 가르시오.” 나폴리 서신 당신은 알고 있나요 ? 도금양들이 활짝 핀 이 고장을. 하늘의 광선들이 사랑과 함께 떨어지는 땅. 대기엔 매혹적인 소리들이 울려 퍼지고, 가장 감미로운 밤이 가장 아름다운 낮을 잇는 이곳을 ? 그대 내게 말해봐요. 이런 황홀한 삶을 느껴본 적 있나요 ? 남녘의 태양이 모든 감각을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