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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네 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문지혁의 『고잉 홈』(문학과지성사, 2024.03)은 두 가지 특징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하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미국 이민자, 혹은 미국 여행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물들은 정착한 이주민이 아니라, 이런 저런 이유로 이동 중인 상태에 있기 일쑤이다. 그래서 그들은 캐리어를 끌고 있고, 버스 매표소 혹은 공항 근처에서 서성인다. 또 하나의 특징은 서술이 아주 매끄럽다는 것이다. 서술의 중심을 차지하는 인물의 심리는 풍경과 인상 사이의 날렵한 대응관계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여기에는 집요한 추구나 복잡한 사색은 없다. 대신 세상..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네 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김나현의 『래빗 인 더 홀』(자음과 모음, 2023.12)은 얼핏 보면 동화 같은 소설인데 자세히 읽으면 오늘날 서민들의 삶을 적절히 반영하는 ‘리얼한’ 이야기들을 기본 제재로 두고 있다. 이렇게 두 겹의 스크린을 겹쳐 놓는 까닭은, 현실에서의 일들이 이해가 불가능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인물들의 삶을 곤란하게 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곤란함 이전엔 현실에 대한 무너진 환상, 즉 환멸들이 있다. 풀이하면 이렇다. 현실은 현실 스스로를 규정하는 각종의 프레임을 양산해 왔으며 사람들은 그 프레임에 맞추어 세게를 해석하는 데 아주 익숙해 ..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세 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작품의 주제와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심사위원들의 평을 참고하시기 바라며, 필자가 생각하는 핵심 사항만 적기로 한다. 김초엽의 『파견자들』(퍼블리온, 2023.11)은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의 본령에 육박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입장에서는, 아주 오래 전에 씌어진 이영의 『신화의 끝』(좋은 벗, 1999)에서 예감했던 한국 과학소설의 전도가 오래 횡보(橫步)를 하다가 이제 본격적으로 발사대에 서게 되었다는 느낌이다. 여기에서 ‘본령’이란 말이 ‘과학소설’에 고정불변의 정의를 부여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읽히지 않기를 ..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세 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최진영의 『단 한 사람』(한겨레출판, 2023.10)은 오늘의 한국 소설, 아니 한국문화의 특정한 예각을 살피게 한다. 예각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이런 유형의 문화를 자발적으로 즐기는 인구가 상당수를 이루고 더 나아가 증가하고 있다는 짐작이 이 작품을 주목하게 한 까닭이다. 두 가지 점을 말해보자. 하나는 판타지(가상 현실)를 현실 상황에 도입하는 방식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언급하자면 판타지는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소망적 상황을 현실로 간주하고 참여시키는 장르이다. 이 ‘비현실성의 현실성’이 작동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
※ 아래 글은 '동인문학상' 제 55회 두번째 독회에 대한 결과로서의 독회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안보윤의 『밤은 내가 가질게』(문학동네, 2023.11)에 묘사된 인물들은 보통 사람들인데, 사람들에게 가정되는 일반적인 속성이 박탈된 상태로 드러난다. 그것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게, 본명 대신 특정한 약어로 불린다는 것이다. 이 약어들은 인물의 삶의 어떤 실제적인 계기와 연결된 소재들 중에서 우발적으로 선택된 호칭들이다. 그들은 ‘후두티’거나 ‘나무’ 혹은 ‘나무반’이다. 그러나 실제 이 우발적으로 선택된 호칭들은 인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다. 인물들은 다들 저마다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런 이름 하에 자신을 인식한다. 그럼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