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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적인 단편 소설의 귀환 - 김은의 『사랑의 여름』 본문

울림의 글/소설읽기

정통적인 단편 소설의 귀환 - 김은의 『사랑의 여름』

비평쟁이 괴리 2023. 9. 26. 13:46

※ 아래 글은 제54회 동인문학상 제 8회  독회에 대한 독후감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김은의 『사랑의 여름』(자음과 모음, 2023.07)은 교과서적인 단편들을 모아 놓고 있다. 간명한 갈등 구조를 통해 사건에 특색을 부여하면서 상징적 제재들의 적절한 활용에 의해 리얼리티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사건의 마디들이 차분한 논리적 단계를 밟고 있고, 배정된 시간의 비율이 고른 점으로, 이는 작가가 매우 오랫동안 소설쓰기를 연마해 왔음을 짐작케 한다. 1990년대 이래 한국소설이 갈수록 플롯이 느슨하게 풀려 온 경향을 안타깝게 여겨 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유붕이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하여 “불역낙호(不亦樂乎)”인 심정을 더해 한국소설에 희망의 점수를 한 점 더 보태게 되는 희열까지 맛보게 된다.
다만 단편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한가지가 이 작품들에는 빠져 있는데, 그것은 ‘반전’이다. 작중 인물들의 앞으로 사건들은 끊임없이 쳐들어오고 인물들은 거기에 맞서 싸우려는 듯 허우적대는 모양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사건들의 물살은 거세기 짝이 없어서, 인물들은 이 파도에 간신히 버티면서 거듭 후퇴하고 있다. 더욱이 인물의 입장에서는 각박하기 짝이 없는데도 현실은 무심하기 이를 데 없어서 그 모습은 “우리에게 닥친 일과는 상관없이 평온하고 고요하게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니, 이는 인물들을 더욱 절망의 구렁 속으로 집어 넣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반전의 부재는, 소설적 약점이라기보다는 오늘날 현실의 압도적인 위력에 직면하면서 점점 더 왜소해지는 인간의 험한 꼴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묘사의 불가피한 행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러시아 문학자 박현섭․박종소 두 교수는 언젠가 체호프의 단편들에 “극적인 사건과 예기치 못한 반전”이 부재하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체호프가 주목한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사건을 견디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규정하고, “사건으로 인해 만들어지던 긴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종류의 긴장이 만들어진다”(『무도회가 끝난 뒤』, 창비, 2010)고 풀이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풀이가 『사랑의 여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독자의 관심은 반전이 없다는 사실을 넘어 “새로운 종류의 긴장”이 김은의 소설에서 그 나름의 방식으로 어떻게 현상하는가를 찾는 것이리라. 거기에서는 반전이 제시하는 것과는 다른 모종의 ‘저항’의 기미들이 다른 방식으로 틈틈이 솟아나고 있을 것이다. 가령, 표제작인 「사랑의 여름」에서 히피문화에 빠져서 집을 버리고 떠돌아다니다 늙어서 돌아온 ‘아버지’에 대한 묘사를 보자. 아버지는 집안을 팽개치고 남은 사람들을 고생시켰고 돌아와서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짓만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쓸모란 '있음‘의 상태가 아니라 ‘없음’의 상태일 때만 유효한 것인지도 몰랐다”고 화자는 생각한다. 그렇게 아버지의 무능력을 반추하다가, “네 아버지는 씨를 뿌릴 줄만 알았지, 거둘 줄은 모르는 사람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린다. 어머니의 말은 물론 아버지에 대한 불신을 아예 못박아버리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바로 이 규정 때문에 이후 ‘장뇌삼’을 찾아 산 위로 올라 간 아버지를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의 모습을 ‘거둘 수 있는 씨를 뿌리는’ 행위로 해석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 가능성은 아주 작은 기미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쌓인다. 언젠가 그 더미에서 ‘빨강머리 앤’이 튀어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