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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 아래는 지난 해 타계한 홍정선 교수의 유고 비평집, 『비평의 숙명』(문학과지성사, 2023.08)에 서문으로 쓰인 글이다. 홍정선 교수를 추모하며,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그의 비평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며 블로그에 올린다. - 홍정선의 비평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할 날을 위해 바치는 제주(祭酒) 한 잔 글과 삶의 병존 문학평론가이고 인하대 명예교수였으며, 계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과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사를 지낸, 고(故 ) 홍정선(洪廷善)은 2022년 8월 21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작고했다. 향년 69세. 병인은 심장병이다. 그는 1년 이상 심장 이식의 기회를 기다리며 인내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으나 끝내 발전된 의학의 도움을 얻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심장병 외에 병발적으로 진행된 다른 ..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여덟 번 째 독회에 대한 심사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과학은 ‘사이파이Syfy’(과학소설)에게 있어서 필요조건이라기보다는 충분조건이라고 여겨질 때가 많다. 특히 한국에서의 과학소설들은 과학적 지식과 환상적 요소들을 뒤섞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 판타지와 과학소설의 정향은 기본적으로 상극이다. 판타지가 잃어버린 왕국에 대한 향수에 기초해 있다면 과학소설은 미지에 대한 탐구이다. 그 점에서 본다면 김보영의 소설, 『종의 기원담』(아작, 2023.06)은 정통 사이파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은 ‘인류세’를 넘어 먼 미래의 로봇이, 로봇의 시각으로, 로봇의 방식으로, 로봇의 지..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여덟 번 째 독회에 대한 심사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김솔은 정보를 가득 담은 광주리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작가이다. 간단히 말해 잡학의 달인이다. 이 점은 소설가의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약점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정보 현시에 대한 충동이 자칫 구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소설의 요소가 아닐 수 없다)에 대한 배려를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신작 소설집, 『말하지 않는 책』(문학동네, 2023.06)은 자신의 생래적 충동을 잘 제어함으로써 단단한 단편들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고 있어서, 반가운 약진이라 할만하다. 물론 갈증 가득한 잡식에 의지하여 있을 법하지 않은 엉뚱한 이야기들을 넝쿨로..
※ 아래 글은 제 54회 동인문학상 여덟번 째 독회에 대한 심사평이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서도 읽을 수 있다. 신문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싣는다. 이번에 후보작으로 선정된 김보영의 『종의 기원담』을 두고 이를 신작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세 편의 단편들을 연작으로 묶어 놓은 이 책에서 두 편은 이미 오래 전에 출간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작품이 보태짐으로써 이 소설이 장편의 모습을 갖추며 완성되었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은 동의를 모았다. 그 이전까지 작가가 발표한 「종의 기원」들은 연속된 단편들일 뿐이었다면, 『종의기원담』은 연작 장편인 것이다. 덧붙여 후보작에는 올리지 못했지만, 신진 류시은의 『나의 최애에게』(은행나무, 2023.06)가 주목을 끌었음을 밝힌다..
사랑이란 – 연가 매일매일을 바람으로 지내는 것, 뭘 욕망하는지 뚜렷이 알지도 못한 채로. 동시에 웃고 우는 것, 왜 우는지, 왜 웃는지도 모르면서. 언제든지 떼쓸 수 있다는 걸 아침에는 두려워하고 저녁에는 소망하는 것. 그이가 환심을 구할 때는 무서워하고 그이가 윽박지를 때는 저게 연심이려니 하는 것. 제 고민을 보듬으면서도 지겨워하는 것. 온갖 얽매인 것들을 공포에 질리면서도 즐거워하는 것. 심각한 문제들을 가볍게 제끼면서 사소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위장했다가 솔직했다가 하는 것. 소심하고, 거만하고, 멍청하고, 빈정대고. 모든 걸 다 바치면서도 아직도 바칠 게 남았는지 떨면서 헤아리는 것. 남들이 고평하는 친구들을 의심하고 낮이나 밤이나 자신과 전쟁을 벌이는 것. 결국, 사랑받을 때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