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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의 무지-정명환 외, 『프랑스 지식인들과 한국전쟁』

비평쟁이 괴리 2023. 12. 13. 06:14

1950년의 한국전쟁이 왜 문제가 되었나? “세계적인 입장에서 볼 때 부차적이고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내란’이 일어났을 뿐인데, 서양의 지식인들이 왜 그리도 법석을 떨었을까? 무엇보다도 그 전쟁이 한국인들의 골육상쟁이기에 앞서서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냉전 체제의 시험장이자 파열구였기 때문이다. 그 시각에서, 한국 전쟁은 지구를 두 쪽으로 쪼갠 거대 이념의 사활을 건 싸움의 무대이자 또한 앞으로의 세계의 향배에 대한 상징적 지표로 기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이념의 선택과 마주해 있던 서양 지식인들로 하여금 한국전쟁을 긴박한 눈길로 바라보게 하고 치열한 논쟁에 휘말리게 한 까닭이다.
정명환․시리넬리․변광배․유기환, 네 사람의 공동연구서(민음사, 2004)가 공들여 재구해놓은 바에 의하면 이에 대한 서양 지식인의 질문은 두 겹을 이룬다. 첫째, 그 전쟁의 정당성 여부이다. 만일 그 전쟁이 추악한 전쟁이라면 그 전쟁을 일으킨 쪽의 배후에 놓인 진영이 악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둘째, 그 전쟁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만일 그 전쟁이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면 그 전쟁에 어떤 방식으로 정당성을 부여할 것인가, 라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응답자로 네 사람의 프랑스 지식인을 선별하였다. 사르트르와 아롱, 메를로-퐁티, 카뮈는 모두 항독 투쟁의 명예로운 경력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지식 마당을 주도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그러한 질문에 가장 적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적임자이자, 동시에 그 질문을 야기한 상황에 다소간의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대답은 곧바로 세계 구상에 대한 생각의 수준을 가리키는 것이 될 것이고 그들의 논쟁은 또한 지식인의 정치적 참여의 방식을 둘러싼 생각의 세계적 수준을 가리키는 것이 될 것이다.
그 대답의 과정을 추적하면서 책은 크게 세 개의 정보를 던진다.
첫째, 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서양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에 매혹당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미래에 올 사회의 이름으로 현재의 사회를 공격”해야 한다는 의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미래에 올 사회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메를로-퐁티가 ‘진보적 폭력’이라고 명명한 것이 그것이다.
셋째, 그러나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 서양의 지식인들은 폭력 자체의 근본적인 부당성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전쟁의 도발 주체를 찾는 일에 골몰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메를로-퐁티는 자신이 본래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공산주의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내면으로 침잠했으며, 사르트르와 프랑스 공산당은 도발 주체를 거꾸로 뒤집는 한편 ‘진보적 폭력’의 논리를 강화하는 태도를 취했고, 이른바 ‘방관적 참여자’로서 냉정하게 상황을 관찰한 레이몽 아롱은 전쟁을 도발한 쪽의 책임을 묻는 결정을 촉구하면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선의(善意) 속에 도사린 광기를 파헤쳤다는 것이다.
독자는 이로부터 역시 세 가지 암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상황의 정당화는 또한 지식인의 자기 정당화라는 것이다. 그 둘은 그 정당화가 내포하고 있는 오류는 신념의 과잉과 더불어 지식인의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 셋은 그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지식인의 본업과 정치적 참여 사이의 관계를 정밀하게 운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업을 망각한 참여는 판단 착오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첩경이라는 것.
또한 책이 침묵의 방식으로 암시하는 것이 적어도 두 개 있는 듯하다. 첫째, ‘한국 전쟁의 도발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전쟁의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전쟁을 실제로 자신의 삶으로 겪고 이해하고 그 전쟁을 야기한 상황을 바꾸어나가려고 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다. 만일 한국전쟁이 냉전 체제의 대리전에 불과했다면 한국인은 그저 꼭두각시일 뿐 진짜 주체는 서양인일 것이다. 그러나 피를 흘린 것은 바로 한국인이었다. 한국인에게는 절박한 그 문제가 서양 지식인의 뇌리에 스칠 수는 아마 없었으리라. 둘째, 당시의 그들은 ‘공산주의냐 아니냐’의 문제로 싸우고 있었지만, 실상 그것은 더 깊은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근본적인 변화의 부대 현상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즉, 50년 후에 최종의 승리를 선언하게 될 ‘세계 자본주의’라는 통합적 질서가 이미 태어났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지식인이란 ‘무지’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질문이 고개를 쳐든다. 지형을 그리고 팻말을 세우면서 세상의 흐름을 인도하겠다고 외치는 저 지식의 장엄한 모습은 무지의 총화가 아닌가? 하긴, 인간은 본래 “오류를 통해 성장”하는 법이니, 그 오류가 또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불가피한 통로이리라. 
󰏔 2004. 4. 10, 조선일보, 한국전쟁을 보는 눈이 그들을 갈라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