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풍경 속에 난 길 - 박목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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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속에 난 길 - 박목월

비평쟁이 괴리 2023. 12. 25. 20:29

박목월(1917-1978)은 1939년 9월부터 1940년 9월까지 󰡔문장(文章)󰡕지에 5편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시인이 된다. “북에 소월이 있다면 남에 목월이 있다”는 찬사와 함께 화려한 출발을 한 그의 시적 이력은 그러나 곧 심각한 정치적 장애에 부닥치게 된다. 그가 등단한 시기는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이었고, 따라서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던 때였다. 일제는 모든 시인·작가들에게 황민화정책을 옹호하는 작품을 쓸 것을 강요하고 한국의 시인들은 그 요구에 부응하여 친일 어용시인으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침묵을 해야하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된다. 박목월은 그 두개의 선택을 모두 거부한다. 그는 그와 거의 같은 시기에 󰡔문장󰡕지를 통해 등단한 조지훈·박두진과 함께 ‘발표를 고려하지 않는’ 시쓰기에 몰두한다. 일제가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한국이 해방되었을 때 그 세사람은 그렇게 쓴 시들을 모아 3인 합동시집 󰡔청록집(靑鹿集)󰡕(1946)을 발간한다. 이 시집으로 인하여 박목월은 문학사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시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박목월 시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자연 묘사에 있다. 그는 자연을 즐겨 노래한 시인인데, 그가 묘사하는 자연은 한국 농촌의 풍경이 고즈넉하게 펼쳐져 있는 향토적이고 관조적인 자연이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봄날의 아지랑이, 그 위를 무료히 달리는 구름, 어딘가 숨어 우는 꾀꼬리 울음 소리, 아침 참나무 가지에 맺힌 이슬, 달무리, 한밤중 수런대는 고목들. 그 풍경 속에는 눈먼 처녀도 시인도 모두 풍경 속의 정물로 가라앉아 있는 듯이 그려진다. 그러나 그 자연 안에는 거의 언제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한줄기 나 있는데, 바로 그것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의 움직임을 은밀히 드러낸다. 따라서 그의 시는 겉보기와는 달리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의 대립적 긴장을 풍경을 가르는 길을 통해 함축적으로 암시한다. 그 풍경과 길 사이의 긴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침묵 속에 잠긴 세상, 그 세상이 정적 속에서 고요히 내뿜는 울음 혹은 삶을 향한 몸짓들, 이 쓸쓸한 정황을 넘어가고자 애쓰는 시인의 외로움 혹은 의지 등등 화해롭지 못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식인의 아픈 고뇌가 조용히 부조되어 드러난다. 그 조용한 고뇌를 시인은 최대한도의 압축과 절제를 통해 표현한다. 시인의 말을 직접 빌면 “간결한 표현, 서술어미나 의미의 적당한 생략에서 오는 여백”을 통해 “의미의 여운”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시에 고전적 품격을 부여하는 이 압축과 생략이야말로 실은 자연과 인간, 풍경과 길의 긴장을 최고도의 밀도로 결정화(結晶化)하는 힘이다. 시인은 그의 느낌을 가능한한 감추려고 애쓴다. 그 감춤이 극도로 추구될 때, 그의 시는 감춤의 행위만을 남기고 모든 풍경을 지워버린다. 그가 묘사하는 자연은 감춤의 비유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역설적으로 풍경 속에 가늘게 새겨진 길이, 자연 속을 조용히 헤매이는 사람의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전경(前景)과 배경이, 드러난 것과 숨은 것이 똑같은 높이의 굴곡을 이루며 그의 시에 유별난 질감을 부여한다.
이 압축미와 함께 박목월시를 특징지우는 또하나의 형태적 특징은 경상도 방언의 독창적인 활용이다. 김영랑·서정주로 대표되는 전라도 방언의 리듬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한국시의 전반적 경향 속에 그는 과감히 경상도 방언의 리듬을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운율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의 경상도 방언 실험은 백석의 평안도 방언 실험과 함께 한국시가 탐구해야 할 중요한 음악적 자원을 이룬다.[1993년 6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