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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이 책(윤호병 역, 문예출판사)은 온건하고도 논쟁적인 저서, 아니, 온건하기 때문에 논쟁적인 저서이다. 뒤에서부터 말하자. 왜 논쟁적인가? “서구에서 문학비평은 문학이 소멸되어야 한다는 소원과 함께 출발하였다”는 도발적인 첫 문장에 그 논쟁의 핵자가 숨어 있다. 문학을 소멸시킬 것을 주장한 그 문학 비평이 바로 플라톤의 『공화국』이라면, 그 주장과 함께 출발한 것은 또한 철학에 의한 문학의 지배의 역사이다. 플라톤은 시인을 추방하려고 했고, 칸트는 문학을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떼어내어 “지옥의 변방으로 이동”시켰으며, 푸코․데리다 등의 현대철학자들은 문학을 전문가들만의 “복잡미묘한 놀이와 쾌락”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단토(Danto)의 용어를 빌어 “철학적 권리박탈”이라고 부..
제목이 수상하다(강지수 외 『문학과 철학의 만남』, 민음사, 2000). 문학과 철학의 만남? 언제 그들이 안 만난 적이 있던가? 적어도 문학 쪽에서 보면 아니다. 50년대의 실존주의, 60년대의 한국의 이념형에 대한 탐구, 70년대의 비판 철학, 80년대의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90년대의 해체 철학은 모두 문학의 마당에서 문학의 몸을 통해 표출된 것들이었다. 현대의 한국문학은 철학하기, 다시 말해 진리에 대한 간구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뜬금없는 게 아닐까? 아니다. 어떤 불길한 징후가 이 책에 실린 글들을 뭉치게 하고 있다. 그 징후는 셋이다. 우선 문학 쪽에서. 언제부턴가 한국문학은 철학을 떠나고 있었다. 진리의 울타리를 뚫고 나가 환상의 대 열락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장경..
마르트 로베르Marthe Robert는 한 손에 카프카를 다른 손에 프로이트를 들고 있었다. 그는 카프카의 작품이 얼마나 재미있는가를 프랑스인들에게 알려준 번역자였으며, 『정신분석의 혁명:프로이트의 생애와 작업』을 써서 라깡으로부터 “최고의 프로이트 전기”라는 상찬을 받은 정신분석학자였다. 『기원들의 소설과 소설의 기원Roman des origines et origines du roman』(김치수․이윤옥 역, 문학과지성사, 1999)은 저자가 손에 든 두 개의 도구를, 때로는 심벌즈처럼, 때로는 캐스터내츠처럼, 그리고 때로는 부싯돌처럼 맞부딪쳐 이루어낸 뛰어난 화음과 번뜩이는 인식의 책이다. 프로이트에서 라깡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정신분석학자들이 정신분석이론의 ‘계몽’을 위해 소설을 수단으로 활용한 것과..
목차만을 따라 읽으면 그 책의 전반적인 구도가 선명하게 머리 속에 펼쳐지는 서적이 있다. 완독하고 난 다음에는 책의 내용까지도 차곡차곡 재기억된다. 『언어와 이데올로기』(Olivier Reboul 저, 홍재성․권오룡 역, 역사비평사, 1994)는 그런 책이다. 교육 철학자의 신념이랄까, 방법론이랄까 하는 것이 완벽하게 적용된 범례이다. 이러한 명료성은 그러나 단순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관되고 세밀한 분류, 섬세한 논증, 그리고 가능한 반론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 등 잘 압축된 풍요함과 어울리고 있는데, 그것은 “원칙과 실례 사이를 끝없이 왕래하는”, ‘절충적’인(즉, 연역과 귀납 사이에 위치한) 연구 방법에 크게 힘입고 있다. 원칙은 하나의 명제로 표현될 수 있다. 즉, 이데올로기는 주술적인 것..
『라신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교학사, 2000)는 국내 연구자들의 라신 이해의 방향과 수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이 보인다. 우선, 수록된 글들은 60년대 신구논쟁을 기점으로 대체된 라신 해석의 새로운 방향을 폭넓게 반영하고 있다. 정신분석(정희수), 마르크시즘(심민화), 구조주의(정병희), 연극기호학(신은영), 주제비평(이윤옥), 상상력 이론(주경미), 해체 비평(이화원) 등 60년대 이후 최근까지의 신비평의 이론들이 망라되어 있으며, 예전의 해석에서는 무시되었던 후기 저작을 재조명하고(김애련), 라신 희곡의 공연적 의미를 밝힘으로써(장성중) “문학의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현대 연극의 지향과 보조를 맞춘다. 그러니까 이 책은 라신에 대한 현대적 해석의 집성물이자, 동시에 현대 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