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1998년 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 100선' 심사평 본문

심사평, 추천사 등

1998년 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 100선'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10. 17:54

한국의 청소년 독서 환경은 기형적이다. 시장은 넓은데 수요는 없다. 당연히 공급도 빈약할 수밖에 없다. 저 옛날 가난했던 시절에도 잡지 학원이라든지, 얄개전류의 명랑소설 등 청소년들만을 위한 도서들이 있었는데, 청소년들의 씀씀이가 풍족해진 오늘에는 아예 전무한 형편이다. 이 기현상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이 그들 나름의 독특한 성향과 문제와 꿈을 가지고 있는 독립된 세대로서 고려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입시와 주입식 교육의 노예가 되어 있는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은 정신적으로는 어린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고, 지식에 있어서는 성인을 능가해야만 하는 지나친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청소년은 청소년이 아니라 늙은 어린이거나 덜된 어른인 셈이다. 이런 환경은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절한 전범을 찾아 볼 시간을 아예 박탈해버린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당장 긴요하지 않은 좋은책을 읽으라고 권장하는 것은 어른들의 염치없는 강요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을 선정하는 선자들의 작업은 무용한 수난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쓸모없는 듯한 이 작업은 그것 자체로서 오늘날 청소년들의 독서 환경을 성찰케 하는 표지가 된다. 이런 일들이 어쨌든 계속 있어야만, 우리는 청소년의 삶의 환경을 개선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선자들은 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이 반영될 수 있도록 유의하면서, 선정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첫째, 고등학생들이 읽기 쉽고 명료한 책이 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의 지식 수준을 고려해서 정한 기준이 아니다. 문장의 모범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청소년들이 글의 기초를 바르게 다지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구체성을 담고 있는 책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잡다한 지식들을 망라한 책보다는 특정한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이 담긴 책이 바람직하다. 깊이란 곧 지식 속에 배어든 삶의 체험과 깨달음의 정도에 다름 아니다. 청소년들에게 독서의 체험이란 무엇보다도 또 하나의 삶의 체험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알려주는책보다는, ‘스스로 알게끔자극하는, 즉 생각과 탐구욕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책은 단지 지식과 정보의 창고가 아니라 저자의 정신적 모험이며, 그것이 독자의 정신적 모험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 ‘좋은 책 100’, 1998.7

※ 주관이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 청소년을 위한 책이 없다는 위의 진단은 지금 수정되어야 한다. 청소년 도서는 양산되고 있다. 문제는 그 성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