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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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추천사 등

2012년 '팔봉비평상'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10. 18:37

최종 심사대상작으로 선정된 평론집은, 김선학의 『문학의 빙하기』(까치), 김수이의 『쓸 수 있거나 쓸 수 없는』(창비), 오생근의 『위기와 희망』(문학과지성사), 이숭원의 『시 속으로』(서정시학), 한기욱의 『문학의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가』(창비), 황현산의 『잘 표현된 불행』(문예중앙)이었다. 한기욱의 책을 제외하면, 시 평론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평론집들이었다. 소설 평론집의 상대적인 침체는 곧바로 한국 소설의 파행에 대한 의혹을 낳았다. 즉 한국소설의 실체와 수준을 궁금해 하는 세계의 눈길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데, 정작 우리 소설은 문학 외적인 사건들을 통해 화제거리로 변질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시평론집의 활기는 문화의 변두리로 밀리며 독자로부터 외면당해 온 오랜 소외기간 속에서도 한국시가 역동적으로 시대의 압력에 역동적으로 저항해왔음을 유감없이 증명하는 증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의 새로움...』에는 오늘의 문학적 논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문학 이념의 실천가로서의 입장과 쓰인 그대로 작품을 읽어보겠다는 허심탄회한 태도가 공존하고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텍스트가 말함으로써 말하지 않은 것, 즉 텍스트의 무의식을 읽어내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쓸 수 있거나...』는 꼼꼼한 시 읽기와 이론 구성이 공존하는 책이었다. 시읽기의 정치함은 놀랍고 배울 게 많았으나, 저자가 구축하고 있는 이론들은 톱니가 잘 맞물리지 않는 듯이 보였다. 『...빙하기』는 한국문학의 모든 주변을 아우르고 있는 다감한 책이었다. 넓게 싸안다 보니 작품에 대한 깊은 분석을 만날 수는 없었다.『시 속으로』는 시인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작품에 대한 섬세한 분석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시 연구자로서의 성실성이 두드러진 반면, 한국문학의 현장감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잘 표현된 불행』은 한국시의 오늘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비평적 활력과 텍스트를 해석해내는 기민한 창안(創案), 그리고 비평가 특유의 화려한 수사가 잘 어우러져 일종의 문학 축제를 펼쳐내고 있었다. 그에 비해, 『위기와 희망』 역시 오늘의 한국문학의 문제들에 대한 신중한 성찰과 작품을 복합적으로 읽어내는 깊은 시선, 그리고 저자 특유의 중후한 문체가 잘 어우러져 마당 깊은 문학의 성곽을 건설하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불행...』과 『희망...』, 두 평론집을 두고 오랫동안 논의를 거듭했으나, 두 분이 쌓은 문학적 공로와 저마다의 방향에서 이루어낸 고유한 비평 세계의 크기를 놓고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오히려 두 분의 공동수상으로 팔봉비평상의 명예는 더욱 드높아지게 되리라는 데 공감하였다. (김치수·김인환·최원식·정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