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심사평, 추천사 등 (77)
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유일한 응모작인 「붉은 꿈」은 ‘분홍신’의 상징에 반향하는 작품이다. ‘분홍신’이란 지극히 세속적인 욕망의 불가해한 항구성을 가리킨다. 그 욕망이 불가해하다는 것은 두 가지 차원에 놓여 있는데, 하나는 지극히 하찮은 소유욕이 그것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기껏해야 명품이나 날씬한 몸매 혹은 화끈한 사랑 등에 대한 욕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욕망은 이미 좌절한 욕망, 혹은 욕망의 찌끼에 불과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서서히 사그러들기는 커녕 사람의 몸속에서 집요히 꼬물거리면서 끊임없는 불안과 충동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그 욕망의 또 다른 불가해성은 이 욕망의 주인은 욕망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약으로도 퇴치되지 않는 기생충과도 같아서 숙주인 인간을 결코 죽이지 않으면서 인간 속에서..
대학생 문학을 바라보는 포인트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글쓰기의 기초에 대한 점검이다. 그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발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기성문학에서 볼 수 없는 과감한 실험정신이다. 그것은 한국문학을 통째로 전복하겠다는 욕망이야말로 대학생의 양보할 수 없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셋째, 대학생의 체험을 인간의 보편적 문제에 어떻게 연결시켰는가이다. 대학생의 체험이 대학생의 의식에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렇게 해서는 성인의 문학인 소설에 합당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투고된 12편의 작품 중 마지막까지 주의를 끈 것은 네 작품이었다. 「나르시스트」는 이상의 「거울」에서 제기된 분열된 자아의 문제를 만화적으로 가공했다는 게 흥미로웠다. 하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심연을 이루는..
투고된 112편의 작품 중에서, 「나무」, 「제곱은 사랑, 닮아가는 것이기에 아름답다 」, 「晴天雨」, 「전농동」, 「모기」, 「빈익빈부익부」, 「바다」, 「동행」, 「우리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를 마지막 후보로 골랐다. 「나무」는 소말리아 난민의 참상을 나무에 투사함으로써 인고와 희망을 동시에 끌어내려 한 수작이었는데, 비유 자체가 꽤 힘겨운 의지에 지탱되고 있었다. 「제곱은...」과 「모기」는, 수학기호와 모기라는 특이한 매개물들에 기대어 사랑의 미묘함을 풀이한 재미난 말놀이였지만, 말놀이와 시의 차이를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쉬웠다. 「晴天雨」는 사물을 새롭게 보는 직관이 돋보인 소품이었다. 「전농동」과 「빈익빈부익부」는 각각 신의 보편성과 우화에 근거해 사회적 부조리를 풍자하는 힘이 있었으나, 기술..
우수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시의 존재이유에 육박하려 고투한 작품들이 많았다. 한국의 독자들이 시로부터 썰물처럼 빠져 나가기 시작한 게 벌써 20년 가까이 된다. 그런 참에 반가운 현상을 목격한 것이다. 대학생의 시들에서 이를 보았으니, 이를 시가 다시 오늘의 육지에 밀물져 올 새 조짐으로 보아도 좋을까? 실로 대학생 문예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수줍은 새로움이라 할 것이다. 초심자의 자세로 문학의 본질에 파고들려고 한다는 점에서 수줍고 그러나 그 순수한 자세로 기성 문학에서 볼 수 없는 참신한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언뜻 보아서는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 두 가지 양상을 여하히 하나로 뭉쳐 보여주느냐에 따라 대학생 문학의 의미가 파악되고 또 그것이 문학장에 미칠 여파가 셈해질 것이다..
한지혁의 「오래된 배」, 「스물」, 「기억 속의 너만이」는 젊은이의 방황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시는 그 이상이다. 손선혁의 「鬪病」, 「반달」, 「벙어리 시인」 등은 감정에 정직한 시다. 감정에 정직하다는 것은 감정을 그냥 노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의 진실성을 계속 되묻는다는 얘기다. 다만 그는 그것을 다양한 거울들에 비추어보는 대신에 감정 자체에 매달리고 있다. 그 때문에 그의 감정은 실감을 상실하고 관념화된다. 류설화의 「겨울나무」, 「비(雨) 와 비(悲)」, 「강물」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썩 세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데 그 멋진 말들이 생각과 감정의 상투성에 휘말려 단순한 수사적 장식으로 전락하고 있다. 정해준의 「햇살의 해저에서」, 「화투연」, 「분자적인 개」 등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