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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추천사 등

2009학년도 연세시문학상 시부문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3. 09:36

우수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시의 존재이유에 육박하려 고투한 작품들이 많았다. 한국의 독자들이 시로부터 썰물처럼 빠져 나가기 시작한 게 벌써 20년 가까이 된다. 그런 참에 반가운 현상을 목격한 것이다. 대학생의 시들에서 이를 보았으니, 이를 시가 다시 오늘의 육지에 밀물져 올 새 조짐으로 보아도 좋을까? 실로 대학생 문예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수줍은 새로움이라 할 것이다. 초심자의 자세로 문학의 본질에 파고들려고 한다는 점에서 수줍고 그러나 그 순수한 자세로 기성 문학에서 볼 수 없는 참신한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언뜻 보아서는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는 이 두 가지 양상을 여하히 하나로 뭉쳐 보여주느냐에 따라 대학생 문학의 의미가 파악되고 또 그것이 문학장에 미칠 여파가 셈해질 것이다.
「낙엽 중의 낙엽」, 「쉽게 쑤어진 시」, 「여름의 조각들」,「나의 안부」, 「타는 가을」, 「고집스런」, 「저녁에 서서」, 「비는」등은 세상에 대한 작은 직관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큰 직관으로 발전시키면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자화상에 대한 한 고백」, 「노변 풍경 1」, 「덕진 연」, 「밤차」, 「메타」, 「단풍」등은 상념의 객관적 상관물을 감각적으로 찾아내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감상이 과잉되거나 생각의 폭이 좁아서 구체적 실감이 오지 않는 약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고가 터널」, 「고가 도로」, 「귀우는 밤」, 「석양」 등은 생각의 흐름을 끈질기게 쥐고 언어와 씨름한 시들이다. 매우 관념적인 그 싸움을 좀 더 아래로 끌어내리면 좋을 것이다. 「철길」 은 생각에 리듬이 잘 실리고 사람들의 관계를 재치있게 비유한 시다. 구도의 단순성을 극복하길 바란다. 「리어카는 굴러갑니다」, 「활극」, 「농담이 섞인 험한 말」은 생활의 구체적인 모습이 잘 묘사된 시들이다. 다만 묘사에 그치고 말거나, 반대로 구체적인 것에 무리하게 큰 의미를 담으려고 하다 보니 상상의 모양이 자연스럽지 못하게 된 약점이 있었다. 「안개」는 비상식적인 자연묘사를 통해 감각의 자동성을 부수고는 그것을 현대 사회에서의 군중적 삶의 불투명성과 전망 부재에 대한 이해의 길로 이은 다음, 다시 군중들의 허약함과 비겁함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로 끌고 가는 매우 인상적인 상상력을 보여주었다.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하게 하기에 족한 작품이었다. 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