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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추천사 등

2004년 이한열 문학상 심사평

비평쟁이 괴리 2022. 12. 5. 08:25

대학생 문학을 바라보는 포인트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글쓰기의 기초에 대한 점검이다. 그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발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기성문학에서 볼 수 없는 과감한 실험정신이다. 그것은 한국문학을 통째로 전복하겠다는 욕망이야말로 대학생의 양보할 수 없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셋째, 대학생의 체험을 인간의 보편적 문제에 어떻게 연결시켰는가이다. 대학생의 체험이 대학생의 의식에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렇게 해서는 성인의 문학인 소설에 합당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투고된 12편의 작품 중 마지막까지 주의를 끈 것은 네 작품이었다. 나르시스트는 이상의 거울에서 제기된 분열된 자아의 문제를 만화적으로 가공했다는 게 흥미로웠다. 하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심연을 이루는 이 문제를 소녀의 성장의 문제로 축소시킨 것이 이 작품을 소품으로 만든 원인이 되었다. 반면, LSD 프로젝트는 우주 탐사선을 타고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겉으로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다루고 속으로는 오늘날의 인류에 미만해 있는 깊은 무기력의 상태를 암시한 소설이다. 양극의 의식을 절묘하게 연결시킨 아이디어와 구성이 좋았으나 그렇게 연결시키다 보니 표면의 이야기가 날카로운 풍자로 발전하지 못하고 이면의 이야기는 구체성을 결여한 채 막연한 암시만 남기고 있었다. 결국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다 놓친 셈이다. 예감 부석사2는 조밀하고 조직적인 소설이다. 이별을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두 남녀의 이별 여행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두 인물의 슬그머니 어긋난 속내를 대비시켜 나가는 착상도 좋았고 시간대의 교묘한 뒤섞음을 통해 독서의 긴장을 유발하는 솜씨가 돋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핏 군더더기처럼 보이는 주변 묘사들이 작품의 주제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글쓴이의 필력을 짐작케 하고 가능성을 예감케 하였다. 다만 이런 방식의 소설쓰기는 여성 소설가들, 특히 신경숙조경란 등의 소설에서 아주 세련된 형태로 드러나 있어서, 그들에 비하면 주제의 폭이 지나치게 비좁다는 인상을 주었고, 군데군데 조사와 어휘의 부정확한 사용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지구인 멸종 방지 대책위원회는 가상의 화성 생물체가 지구인을 멸종시키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오늘날 지구에서 인류가 자행하고 있는 생명과 환경 파괴를 반어적으로 풍자한 S/F 우화 소설이다. 착상도 좋았으나 풍자의 폭도 아주 넓어서 인간의 자연 개발과 생명 파괴, 그리고 인종 경영 등 인간이 타자에 대해 행하는 온갖 종류의 폭력을 폭넓게 비꼬았다. 게다가 인물들의 행동에 리얼리티가 있어서 이 작품을 우화로 읽을 수도 미래 소설로 읽을 수도 있게 했으며, 그러한 중첩적 구성을 통해 인간의 오만과 인간 삶의 허무함을 동시에 환기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문체를 보완한다면 앞으로 큰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이다.

예감 부석사2지구인 멸종 방지 대책위원회를 두고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후자를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도 주제의 폭과 대담한 실험 정신이 대학생문학에 소중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선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예감의 작가도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으니 좀 더 정진하면 언젠가는 활짝 개화하리라고 믿는다. 그 밖에 내가 네 마음의 시량이 되어줄 것이다, 중도 6층엔 창문이 없다, 겨울, 초생달도 읽을 만하였다. 실망하지 말고 꾸준히 쓰면 나중 된 자가 먼저 될날이 올 수도 있으리라.